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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 <사춘기> 후기
김행숙의 시집 <사춘기>는 청소년 화자를 잘 사용한 대표적인 예시로, 청소년기의 혼란스러운 정서와 자기 인식의 과정을 독특한 언어로 풀어낸다. 시 한 편 한 편이 일상적이고 쉬운 시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안에 미묘하고 기괴한 감각을 담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문장들이지만, 그 문장들이 주는 정서의 파장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쉬운 언어로 이렇게도 난해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떤 공력과 실험 정신이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사람>은 김행숙 특유의 문체와 정서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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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 김행숙
왜 나는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까?
햇빛이 비치면
왜 나는 가난한 집 아이로 태어났을까?
눈사람은 좋겠다.
시간이 펑펑 남아도네. 눈보라처럼 어지럽게 아이들은 자라고 눈사람은 점점점 자란다. 눈사람이 작아졌다! 엄마가 죽었다. 내가 예뻐지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가 죽었다. 눈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 때문에 나는 점점 이상해진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자세히 좀 말해줄래? 요즘은 거울도 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아직 남아 있는데 마치 다 녹았다는 듯이.
내 눈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
마치 찬장에서 설탕이나 기름병이 사라졌다는 듯이
사소하게
나는 시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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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눈사람이라는 친근한 소재를 통해 시작하지만, 곧 정서적으로 복잡한 질문들과 진술들이 이어지며 독자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왜 나는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까? / 햇빛이 비치면 / 왜 나는 가난한 집 아이로 태어났을까?'라는 구절에서, 계절적 이미지와 존재론적 질문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나타난다. 문장 간의 비약이 크지만, 그 사이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의 흐름이 분명히 존재한다.
시 전체를 지배하는 감정은 슬픔에 가까운 무력감, 혹은 상실에 대한 정서 같다. 눈사람은 만들어지고, 커졌다가 작아지고, 결국 녹아 사라진다. 화자의 삶도 그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가족의 죽음과 같은 개인적 상실, 자신에 대한 불확실한 인식, 그리고 사회적인 소외감이 눈사람이라는 은유 속에 겹쳐져 있다. '요즘은 거울도 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라는 문장은 자아 인식의 단절을 상징하며, 정체성을 붙잡기 어려운 사춘기의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 '나는 시장에 간다'는, 그런 감정의 끝에 던져진 듯한 건조하고 일상적인 행위로, 그 감정의 깊이를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김행숙의 시는 종종 알아듣기 쉬운 기표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기의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그 모호함이 시에 생동감을 부여해 준다. 이 시를 읽고 나면, 무엇을 정확히 느꼈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워도, 분명 무언가 마음에 남는다.
이 시집을 읽으며, ‘사춘기’라는 시어가 단순히 나이로서의 사춘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불완전성과 그로 인한 감정의 불안정함, 그리고 세계와의 거리를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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