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캠핑 친구들과 포천 왕방산(736.7m)으로 1박2일 백패킹 야영을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대진대학교 바로 뒤에 위치한 산으로서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다녀갔다 하여 왕방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동쪽의 왕산사에서부터 오르는 급경사 코스에 비해 소요 시간은 더 걸리지만 완만한 능선길을 걷게 되는 오지재 출발 코스를 선택하여 산을 오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 코스도 결코 쉽지가 않은 것이, 등산 초입부터 600여미터를 가파르게 올라가야 비로소 능선길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6월 원적산 산행 이후 백패킹 야영은 처음이었기에, 평소에도 산 타기 힘들어하는 초보 백패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고난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출발부터 숨가쁜 호흡에 주저앉거나 뒤쳐지기 일쑤, 600미터를 한 시간 넘게 오른 것 같습니다.  이처럼 산행 내내 동행 친구들에게 민폐를 끼쳤으니 천덕꾸러기가 따로 없었습니다.


산행 시간이 계속해서 지체된 탓에 결국 해가 떨어지고나서야 정상 야영지에 도착했고, 결국 해넘이도 카메라에 담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졌지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죽겠던 걸요.  매번 산행 시마다 처음 상태로 리셋되는 저질 체력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은 표정 짓지 않고 기다려준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답니다.  힘든 길을 동행해준 그들이 없었다면 진작에 포기를 했겠지요.  아무런 미련 없이 말이지요.








앞서가는 친구들...  





배낭을 고쳐매는 사이 이미 저만큼 멀어져 갑니다.





드디어 지옥문이 열립니다.  거의 이 각도의 등산로가 600미터 동안 이어집니다.





이제 겨우 300미터 올랐을 뿐인데, 체력은 완전 방전 되었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숨이 가빠왔습니다.





기다려줬던 친구들이 다시 앞서 출발하고...





그 뒤를 힘겹게 걷다가 한계에 이르고야 말았습니다.  어깨를 짓누르는 중력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배낭을 벗어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숨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갈등에 빠졌죠.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사실 혼자 올라오는 내내 "다시 내려갈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않았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한계에 다달았을 때마다 앞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생각을 넘어서 실천으로 옮겼을지도 모릅니다.  






네 발로 기다시피 겨우 올라오니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며 대진대 방향 조망을 가진 테라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른 다시 짐을 내려놓고 경치 구경을 핑계로 시간을 벌어봅니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논과 함께 포천 시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전망은 정상보다 오히려 여기가 나은 듯...






오늘의 산행을 기획한 장카피...  10년지기 캠핑 친구입니다.  보기와는 다르게 꾸준한 등산으로 단련이 되어있어서 매번 산행을 이끌어줍니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카메라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냥 배낭 속에 넣어서 패킹을 해버립니다.  2kg에 육박하는 카메라가 어깨나 목에 걸려있으면 진동으로 인해 더 큰 무게감을 느끼게 됩니다.  아무튼 이후에 찍은 사진이 없으니... 다음 컷은 당연히 바로 산 정상으로 넘어갑니다.






다시 촬영이 재개 되었습니다.  정상 바로 옆 헬기장에는 우리 외에 초캠 분들이 먼저 자리잡고 계셨구요.  좁은 곳이었지만 매너 좋은 이웃을 만나서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아, 이날은 예정에도 없던 일행이 있었습니다.  바로 장카피 님의 블로그 이웃인 하냥 님과 그의 친구 처리 님...  우리가 - 사실은 내가 - 엄두도 내지 못하고 포기를 했던 왕산사 쪽 코스로 단숨에 치고 올라오셨더군요.  우리가 출발하며 약속을 잡았는데도 단거리 코스로 이미 올라오셔서 이렇게 자리를 잡고 계셨던 것이었죠.  모든 게 다 터미네이터 빰치는 하냥 님의 강철 체력 덕입니다.  아무튼 처음 만나 많은 신세를 지었습니다.





유성우 같은 밤하늘의 별들...





돗자리 위에 카메라를 누이고 장시간 조리개를 열어줍니다.  이웃들의 텐트에 불이 모두 꺼지고 나서도 한참동안을 그렇게 어설픈 별 촬영을 했답니다.  어쩌면 술 먹은 이후의 주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ㅡㅡ^






아침이 밝았습니다.  플라이이에 잔뜩 묻어있는 물방울...  결로인가 싶어서 손으로 쓱 문질러 보니 전혀 묻어나지 않습니다.  텐트 겉면에 이슬이 맺힌 거죠.  

지난 번에는 곱등이와 동침을 했고, 그 이전에는 모기와 함께 피를 나눴었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불청객이 없었습니다.  정말 혼자 외롭게 잔 셈이네요.







간밤에 잘 주무셨나요?  





들꽃 가득한 야생의 정원...





이를 지나 발 아래 산밑을 내려다보면...





이처럼 운무가 포천 시내를 뒤덮고 있습니다.
산 아래 사람들은 단순히...  짙은 안개가 낀 아침이라고 생각하고 말겠지만,





몇걸음 밖의 풍경은 이처럼 사뭇 다릅니다.  우리네 삶도 그러하겠지요.






간밤을 함께 한 이웃 텐트들...





높은 습도에 잔뜩 결로 맺힌 텐트 플라이...





사내들이 모였으니 장비 자랑이 빠질 수 없지요.  





처리 님이 꺼내놓은 신상 군용 반합...  이렇게 손잡이를 연결하여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답니다.  





쓸데없이 탐나는 장비중 하나입니다.  신상이 좋긴 좋군요.  
참고로... 군부대에서 나온 게 아니라 제조처를 통해 받은 샘플이랍니다.
실제로 스위스 밀리터리사에서 동일 디자인의 제품을 판매 중입니다. (4만 원대)





친구의 블로그 이웃 하냥 님, 겉으로 풍기는 남성미와 다르게...

아기자기하게 꾸민 사이트의 모습...





이런 의외성이 우리 인생을 더욱 재미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매번 예상대로라면 얼마나 밋밋한 삶이겠어요.





갑작스럽게 산아래에서 안개가 밀려 옵니다.





헬기장이 운무에 휩싸입니다.  

맑은 날보다 이런 날이 사진 속에서 더 드라마틱한 법이죠.  실제로도 그렇구요.




남자들이 아침부터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 것인지...

몇 시간을 여러 메뉴의 브런치를 해먹으며 수다를 떨었답니다.  







백패킹 야영시 비추하는 의자들...  막상 펼쳐두면 좋지만 갖고 올라가기가 힘이 들어서 계륵같은 물건이긴 합니다만, 이웃과 함께 하는 자리라면 어쩔 수 없이 챙기게 됩니다.  남들 의자에 앉아있는데 나 혼자 땅바닥에 쑥 꺼진 채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크고 무거운 제드 체어...  앉아보니 머리까지 감싸주는 것이 참 편합니다.  빈 의자 상태에서 앞으로 쉽게 잘 넘어지는 것이 단점이긴 합니다만 착석감은 최고인듯...  물론 이를 옮길 강철 체력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감히 엄두를 내지못할 물건입니다.  적어도 제게는 넘사벽이죠.





이제는 집에 갈 시간...  아니 머문듯 떠날 준비를 해야지요.





아무리 많은 짐도 결국 배낭 하나에 다 들어가니... 이게 백패킹 야영의 참맛이지요.  






엄청난 부피와 무게의 하냥 님 배낭(왼쪽)입니다.  오른쪽 75리터 배낭이 여성용처럼 보이게 하는 마법을 부립니다.  다시 한 번 존경합니다.  잘 챙겨주셔서 고마웠구요.




들꽃과 추억만 남긴 채 하산길을 서두릅니다.  반가왔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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