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 문자를 하나 받았습니다.

"000산악회 해체 관련하여... 1인당 16.8만원 입금하였습니다. 그동안 000산악회를 사랑하여 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2023년 계유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000산악회장 000 드림"

여기서 000은 저희 회사 이름이고 저 문자는 사내 산악회장님한테서 온 산악회 해산 및 잔여회비 반환 안내였습니다.

제가 처음 등산에 입문한 게 벌써 16, 17년 쯤 된 것 같네요.

당시 주 5일제를 앞두고 과도기적으로 월 1회 토요휴무를 시행했는데, 선물같은 토요일 오전에 뭘 할까 궁리중에 우연히 북한산에 가봤습니다.

등산화도 베낭도 없이 그냥 가본 북한산이 맘에 들어 등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침 사내 산악회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나름 역사도 오래되었고 월 1회 정기산행 안내문이 사내 게시판에 올라오기때문에 그 전부터 이름은 알고있었습니다.

정식 가입에 앞서 옵저버(?) 자격으로 2월 소백산행을 신청했고, 만만하게 생각하고 생전 첨 가본 소백산에서 겨울산행의 호된 맛을 봤죠 ㅠ

죽을뻔 했지만 그래도 그 기억이 좋았던지, 정식가입을 하고 틈틈이 산행에 참가했어요. 그래봤자 연간 서너번 정도지만.

제일 놀랐던 건 당시 제 나이가 30대였는데, 참가자 중 가장 어리다는 것. ;;

주로 40-50대 직원분들이었고 서로들 잘 아는 것 같았어요.

같은 회사지만 직종도 다양하고, 심지어 문구점이나 은행같은 입점업체 사장님들도 같이 오신다는 거 ㅋㅋ

그럼에도 그들은 고수였습니다.

등포 여러분 공감하시겠지만, 처음 입문하고선 등산복이며 장비며 이것저것 사모으는 재미가 쏠쏠했죠.

산행 가는 날엔 은근히 뽐내고싶기도 하고 ㅋㅋ

그런데 거기 회원분들은 나이만큼이나 옷이나 장비 모두 연륜(?)이 있고 유명 메이커도 별로 없더라고요.

하지만 막상 산행 시작하면 그분들은 정말 가볍게 산에 오르고 시종 여유가 넘치십니다.

그때 깨달았죠. 등산은 장비빨이 아니라는 걸. ㅋㅋ

한해 두해 지나며 자주는 참여 못했지만 회원분들과도 익숙해졌는데...

산악회의 고민은 갈수록 고령화되는 조직이었고, 코로나로 인한 3년 가까운 활동정지가 결정타가 된 것 같습니다.

최근 젊은세대가 등산으로 많이 유입된다고는 하지만 저희 회사 자체가 고령화된지라 회원 확장도 어렵고요.

사내 산악회가 아니어도 원래 혼산을 즐겨 하고 가끔 반더룽같은 안내산악회를 이용하기 때문에 

제 산행 라이프에 큰 타격이 생길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회사생활에서 업무 외에 뭔가 활력소 역할을 해줬던 고마운 존재가 없어진다고 하니

새해를 맞아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몰려옵니다.

특히 산행날 출발직전 버스에서 집행부가 나눠주셨던 따스한 백설기 한덩어리가 그리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