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도시의 온화한 공존. 내남 없이 모두에게 열린 길. 안산 자락길.

푼짱입니다. 지난번 광명 누리길에 이어 이번엔 안산 자락길을 다녀왔습니다. 서대문구 안산을 빙빙 에둘러 조성된 자락길은

총 7km쯤 됩니다. 부지런히 걸으면 2시간 남짓 정도가 소요되는 짧은 코스입니다. 인왕산과 마주 보고 있는 안산은 높이 295m에

불과한 작은 산이지만 자락길만 놓고 보면 흔한 동네 뒷산 약수터 산책길과는 확실하게 차별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산자락을 한 바퀴 휘휘 돌아보는 코스여서 원점회귀가 가능하고 딱히 높낮이가 없는 유순한 길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집니다.

그래서 일부 구간을 제외하곤 휠체어를 끌고도 돌아볼 수 있죠. 

운동이라면 끔찍하게 싫어하고 3보 이상 이동 시 승차가 원칙인 장관도 자락길은 씩씩하게 완주에 성공했습니다. 폭염이

들끓는 날씨 탓에 막판에 강아지가 조금 힘들어 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견하게 한 바퀴를 마쳤습니다. 트레킹 마치고 점심 먹고

집에 갈 때쯤 되니 소나기가 쏟아지더군요. 여러모로 운이 좋았던 날입니다. 

산행거리 약 7 km, 산행시간(3시간, 휴식 및 촬영 포함)

사진은 모두 1200px로 올렸습니다. 클릭하면 업로드 한 사이즈 그대로 보실 수 있습니다. 

서대문 독립공원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이진아기념도서관쪽으로 올라갑니다. 공영주차장이 꽤 넓어서 주차하기 용이합니다.

서대문 형무소에 단체관람 온 학생들만 없으면 주말에도 큰 걱정 없습니다.

서양톱풀. 우리나라 토종톱풀과 유사하지만 꽃잎의 갯수가 다르고 색깔도 다양합니다.

가우라. 톱풀과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외래종 여름꽃 중 하나죠.

이진아 기념도서관 뒷편으로 올라서면 본격적으로 안산 자락길의 시작을 알리는 계단이 등장합니다.

더위를 피해 아침 일찍 나섰는데도 오전 9시부터 미친듯이 해가 내리쬡니다. 꿀맛같은 일요일 아침잠 포기하고 따라나선

장관이 저를 노려보는 눈빛도 덩달아 뜨겁습니다 ㅠㅠ

계단을 다 올라서면 양갈래 길이 나오는데요. 왼쪽, 오른쪽 어디로 가든 다시 이 자리로 원점회귀가 가능합니다.

추천 코스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는 길입니다. 걷기가 조금 더 수월합니다.

야구장 가자고 했으면 하루종일 웃었을 강아지가 산에만 오면 장승처럼 얼굴이 굳어버립니다. 엄마 닮아서 걷는걸 어찌나 싫어하는지;;

인왕산 매바위, 범바위가 보입니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고 푹푹 찌는 게 어째 소나기가 올 것 같은 날씨입니다.

개맥문동. 맥문동보다 꽃이 크고 투박한데다 색깔도 다릅니다.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게 이런 거 하지마...그냥 자연스럽게 바라봐도 된다오 ㅠㅠ

안산 자락길은 데크길과 흙길이 이어졌다 끊어지기를 반복합니다. 높낮이가 거의 없어 노약자도 충분히 걸을 수 있죠.

파란색 화살표를 보고 계속 갑니다. 노란색 화살표는 우리와 역방향으로 진행하는 이들이 가는 길입니다.

-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 작간데예

- 잣..까? 이자슥이 미친나. 니 지금 내한테 뭐라캤노? 

군데군데 쉼터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습니다. 정자도 더러 있고 특히 화장실이 아주 잘 관리되어 있습니다. 

봄에 봤던 죽단화가 여름에 또 피었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반갑긴 하다만 어찌된 영문인지 아리송합니다.

길고 완만하게 꺾어진 길을 따라 설렁설렁 걷습니다. 자락길 대부분의 구간이 나무가 해를 가려줘서 크게 더위를 타진 않아요.

중간에 봉수대가 있는 안산 정상까지 가는 길이 여러 번 나옵니다. 혼자 왔으면 대번에 올라갔다 왔을 테지만

가족과 함께 왔으니 정상은 생략하고 자락길에만 집중하기로 합니다.

조금 애매하다 싶은 구간은 모두 데크가 깔려있습니다. 숲을 최대한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성되어 울창한 숲을 계속 옆에 끼고 걷기 좋네요.

메타세콰이아 숲길 구간. 자락길 전체 구간 중에서 여길 지날 때가 가장 좋았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어찌나 울창하던지.

장관과 강아지도 잠시 멈춰서서 하늘 위로 뻗은 메타세콰이어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여기가 아마 숲속무대일 것 같은데요. 상당히 넓은 광장에 나무로 된 쉼터를 조성해놨습니다. 도시락 까먹기도 좋네요.

숲속무대를 지나면 이제 능안정까지 지척입니다. 능안정부터는 계속 내리막이라 거기서부터는 더 쉽죠.

보랏빛 맥문동. 징글징글할 정도로 많이 피어 있습니다.

살짝 완만한 오르막 흙길을 걷다 보면 반가운 외침소리가 들립니다. 그게 뭘까요?

능안정 방면으로 가야 처음 출발했던 서대문 형무소로 원점회귀할 수 있습니다. 중간에 샛길도 있는 듯 하더군요.

외침소리의 정체는 아이스께끼 아저씨였습니다. 요새 동네 뒷산도 단속이 심해서 잘 안 보이던데 안산에는 있더군요.

덕분에 시원하게 하나씩 깨물면서 갑니다.

능안정으로 가는 길에 참나리 군락지가 있습니다. 꽃이 크고 반점도 독버섯마냥 진해서 중나리 같은 미끈한 멋은 없어요.

다닥다닥 꽃이 핀 누리장나무에서 풍기는 진한 향기가 숲길에 진동합니다. 옆에 서있으면 어질어질할 정도에요.

왼쪽 인왕산, 오른쪽 북악산. 인왕산 뒷편으로 북한산 비봉능선 자락이 보이는군요. 

다 죽어가더니만 아이스께끼 하나 깨물어 먹고 원기회복한 강아지가 이젠 엄마를 리드하고 있습니다.

서대문 독립공원까지 이제 1.35km 남았습니다. 거진 다 왔네요. 날은 덥고 배도 고프고. 어여 가야겠습니다.

사이좋은 오누이 같은 장관과 강아지. 가끔 소외감을 느낄 때도 있죠. 저보단 훨씬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두 사람이니 당연한 노릇이지만.

이 데크구간만 다 내려가면 서대문 형무소로 가는 길과 만납니다. 다 왔네요 이제.

몸도 더 커지고 힘도 쎄지고 공부도 잘 했으면 좋겠지만 그건 부모 욕심이고요. 자식은 자식대로 자기 안의 세월을 하루하루 태워가며 성장합니다.

남에게 폐 끼치는 거 싫어하는 아빠 덕분에 남들처럼 "땡깡" 한번 부려보지 못하고 너무 고분고분한 성격으로 큰 게 아닌가 싶어서 미안한 마음도 들어요. 

꽃밭에 쪼그려 앉아 엄마랑 무슨 얘기를 그리 재미있게 하는지. 아빠한텐 야구장 가고 싶단 얘기밖엔 안 하면서;;

메리골드. 토끼풀만큼 흔하게 피어있습니다.

안산 자락길 걷는 동안 개장한 서대문 형무소에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주말이라 가족 단위로 많이들 오셨나 보네요.

주차장을 나와 정동에 있는 강남면옥에서 냉면 한 그릇씩 시원하게 들이켰습니다. 얼마나 더위에 쩔었는지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비웠네요.

평양냉면 좋아하는 저로선 함흥냉면은 그닥 선호하는 음식은 아닌데 가끔 먹으면 또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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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도 덥고 밥때가 딱 되서 시간관계상 서대문 형무소는 생략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자락길 가시면 서대문 형무소도 둘러볼만 합니다.

근처 사는 부모님들은 아이들 손잡고 이진아 기념도서관에도 많이 가시더군요. 도서관에 에어컨 빵빵 하고 책도 마음껏 볼 수 있으니

그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괜히 또 욕심이 발동해서 안산 내려와 맞은편 인왕산으로 끌고 올라가는 우만 범하지 않으면 되겠습니다. 

우중에 어디 돌아다니는거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안산 자락길은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날 한 번 더 걸어보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한 주 활기차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