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
등산포럼
▼▲
>
분류
▼▲
네팔 랑탕, 고사인쿤드, 헬람부 트레킹 3/4(모바일주의) 54
북마크
주소복사
공유하기
30파워링크등록안내
[지난글]
네팔 랑탕, 고사인쿤드, 헬람부 트레킹 1/4(모바일주의)
https://m.ppomppu1.co.kr/new/bbs_vi...
네팔 랑탕, 고사인쿤드, 헬람부 트레킹 2/4(모바일주의)
https://m.ppomppu1.co.kr/new/bbs_vi...
어제 맞은 소나기 덕분에 젖은 옷들을 말리느라 이른 아침임에도 출발하지 못하고 발이 묶여있습니다.
여벌옷 따위는 안가지고 왔고 봄/가을 바지랑 겨울바지, 반바지, 오버바지만 있는 관계로 그냥 아침볕에다 옷과 양말을 말리면서 롯지에서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보냅니다.
다행히 감기기운은 없지만 약간의 두통이 있어 아스피린 한알 먹었더니 어째 머리가 더 아파지는 것 같은...
그래도 최상의 몸상태와 비교해보면 그리 큰 차이는 안나는 듯 한데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트레킹코스로 진입한다는 설레임에 분위기는 UP.
그리고 이제부터는 오롯이 혼자만의 여행길이 시작되고 이건 네팔에 머무는 3개월동안 끝까지 이어집니다.
롯지에 묵는 객이 많으면 도난사고를 조심해야 합니다.
양말이나 바지같은 것이 아무것도 아닌것 같지만, 도난 당하면 기분도 그렇고 자칫 트레킹일정이 바지나 양말 때문에 엄청나게 틀어질수도 있으니...
특히 잠바나 신발, 배낭은 빨거나 말릴때도 꼭 지켜보고 있어야하죠.
후담입니다만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를 다녀와서 푼힐로 향하던 중 묵었던 롯지에서 양말 2켤레 도둑맞았습니다!
다행히 롯지에 손님이 저밖에 없어 마음놓고 난간에다 널어둡니다.
이른 아침인데다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여느때의 그 건조한 공기보다는 훨씬 많은 습기를 머금고 있어 상쾌하기까지 합니다.
아침으로 간단히 찐감자를 먹습니다.
보통은 달밧을 주문하는데 양도 양이지만 리필이 가능해 배를 꽤 채울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달밧 만들려면 밥해야 한다고 아지매가 그냥 주는대로 먹으라고 하네요.
사진에 새겨진, 내가 머물렀던 시간의 한 장면을 봅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시간이 흐른 지금, 이런 과거에 갇힌 하나의 공간을 볼 때면 뭐랄까 참 신기한 느낌마저 듭니다.
카메라가 없었던 시절에는 아마도 직접 필기로 채워넣은 수첩같은 걸 보면서 그 과거의 발자국을 더듬어 봤겠죠?
저 다이어리는 모든 공백이 채워진 채 보물상자안에서 잠자고 있다가 얼마정 잠시 세상구경을 한번 했죠.
옷이 대충 말랐을 즈음, 배낭을 꾸리고 고사인쿤드로 향하는 새로운 길 위에 서 봅니다.
지도하나 달랑 손에 쥐고 있는데다 겨울시즌 비수기라서인지 트레커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아 길찾기 걱정이 좀 됩니다만...
그때 걱정은 그때 하기로 하고 지금은 그냥 설레임만 가지고 갑니다.
마을을 나서서 언덕배기에 오르니 장대에 걸린 룽다가 파란 하늘아래서 손을 흔들며 저를 반겨줍니다.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 바람에 실려 날아다니고 날아다니다가 저 멀리에 있는 그 누군가에게 잘 전해졌는지 모르겠군요.
툴루샤브루 마을모습과 그 뒤로는 불과 며칠전까지 만년설이 뒤덮은 산들의 아랫자락에 머물렀었다는게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다시 되돌아 가볼까 하는 강한 여운마저 남지만...싸나이 앞길엔 오직 직진뿐?
참고로 정확히는 가네쉬히말의 산군들입니다.
쵸르텐(mchodrten)에 원색의 룽다와 타르쵸가 이쁘장하게 걸려 있습니다.
스투파(좀 큰 규모의 불탑)같은 경우엔 큰 사원같은 곳에 세워지지만 이런 작은 규모의 불탑들은 마을어귀, 높은 산의 정상, 강가 등 현지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신성하게 여기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세워져 있답니다.
수천년을 이어오며 그들의 삶속에 자연스레 깊이 자리잡은 신앙을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부정하는 짓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
왜냐하면 일부 광신도들은 우상숭배를 빌미로 이 아름다운 유산을 훼손하거나 파괴하는 행위가 종종 행해지고, 거기에는 안타깝게도 한국인도 있답니다...
겨울 기온에 설원이나 관목지대가 아니라 키큰 침옆수들과 서늘한 가을 같은 기후로 빠르게 변해갑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을 하루만에 다 겪어 볼수도 있을거 같다는...
비록 기온이나 식생은 다르지만 저 멀리 보이는 하얀 봉우리들을 바라보면 아직 히말라야의 옷자락 끝을 놓고 있진 않은듯 보입니다.
이제는 덥기까지해서 잠바 다 벗어버리고 반팔티셔츠를 입고 갑니다.
가끔씩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땀을 식혀줄 땐 마치 한여름 공룡능선이나 소백산 같은 곳에서의 그 바람맛과도 비슷하게 느껴지네요.
이제부터는 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아래는 눈밭이요, 위로는 침엽수들이 쭉쭉 뻗어있는, 우리네 눈내린 초겨울산 같은 길이 펼쳐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추운것도 아니고, 더운것도 아니고, 기온은 2월임에도 늦여름 혹은 초가을 같은 요상한 상태입니다. ㅎㅎ
이렇게 가끔씩 만개한 꽃과도 마주칩니다.
복숭아/살구/매화 정도의 꽃 크기와 모양인데 나중에 자주 이 꽃을 만나게 되므로 철 모르고 잘못 핀게 아니라 정상적인 개화 같습니다.
밤에는 영하로 기온이 뚝 떨어지기도 하는데 용케 화사한 꽃잎을 피워가네요.
보통은 수분을 곤충들이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활동하는 곤충이 있을리 만무하고...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겠죠?
아랫지역에서 많이 보이던 이끼류?의 기생식물들이 여기서도 길게 머리 풀고선 미풍에 나풀거리네요.
귀신머리는 하나도 안무서운데 마무라는 무섭!
Q)이 나무의 가지를 세어보시오!
A)리미트 엔이 0에서 무한대로 가면서 라플라스와 퓨리에를 한번 만난 후 미분과 적분을 수차례하면 답이 나옵니다.
음...
나중에 나눔할때 한번 써먹어보겠습니다.
아.. 점심때 즈음 도착한 롯지인데 문닫.
게다가 오가는 사람도 없고 배는 고프고...
카트만두에서 스니커즈를 30개 정도 사왔는데 이럴때 참 요긴하게 먹습니다.
물도 떨어져 그냥 쵸코바만 씹어먹으니 입이 달고, 침이 진득진득해져 이것 참... 불편합니다만...
굶지 않는게 어딥니까!
많은 지인들이 의아해하며 비웃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봐도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바로 쵸코바 30개 + AA건전지40개정도(카메라세로그립에 8개들어감)를 항상 출발전 챙기고 다닌 것...
좀 무겁긴 하지만 장기 트레킹시, 혹은 고립되거나 이렇게 밥때에 롯지나 민가 못 만날때 아주 요긴합니다.
건전지의 경우 대부분의 롯지에 전기는 커녕 초도 안주는 곳이 허다한데다, 전기충전은 언감생심, 롯지에서 파는 건전지는 유통기한 몇년씩 묵은것도 있으니...
요새는 좀 나아졌는지 모르겠군요.
쵸코바 먹으면서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둘러봅니다.
지도 보면서 시간이나 난이도도 가늠해봐야하고, 주린배를 채울 다음 마을도 찾아야하고...
게다가 해도 이제 슬슬 붉은 빛을 발하려고 합니다.
어제의 소나기에 흠뻑 젖었었지만 덜 마른 채로 그냥 걷다보니 가죽이 다 말랐네요.
대신 냄새는 참... 기막히죠!
등산화에 홍어를 키웁니다.
쭉쭉 뻗은 침엽수림 사이로 난 조그만 오솔길을 따라 갑니다.
출발 이후에 사람을 한명도 못 만났습니다.
이건 당시 제 다이어리에도 적혀있는데 배는 고프고, 오가는 사람도 없고, 마을도 안보이고...
어차피 동계침낭과 비상용 판쵸가 있으니 최악에는 어디 A텐트라도 쳐야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더군요.
뭐 결과적으론 좀 있다 롯지에 도착하게 됩니다만 이 불안감은 묘한 흥분과, 두려움 둘 다 만들어냈던 것 같습니다. ㅎㅎ
야영이라도 해야한다면 푹신한 이끼들 뜯어서 바닥에 고루고루 깔아두면 더 따뜻하겠죠?
드디어 배를 채워주고 비바람을 피하게 해 줄 마을의 이정표를 만납니다.
작은 나무널판지를 생목에다 못질해둔게 다지만 얼마나 반갑던지...
이쪽 지역의 경우 표지만이나 안내도가 무척 박한데다 주요지점인데도 아예 없는 경우가 무척 많으니 트레킹시 주의해야합니다.
그리고 탁트인 곳과는 다르게 이렇게 숲이 우거진 곳에선 길을 잃는 최악의 경우도 한번쯤은 생각해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눈비라도 오고 나침반이나 지도마저 없다면 방향조차 잡질 못하니까요..
나무널빤지에 이정표를 그려서 길에다 뒀는데 제가 처음 발견했을때는 뒤집혀져 있었습니다.
이게 뭔가하고 스틱으로 뒤집어보니 표지판...
고사인쿤드로 가는 길이 맞긴 맞나봅니다.
빵집은 역시 독일빵집.
허나 우리가 흔히 아는 빵은 주문불가!
짜파티만 가능...
뭐 짜파티도 밀반죽(보리나 다른 곡류로도 가능)을 구워낸거라 빵이라면 빵이랄까...
성수기때는 맛있는 빵도 굽는다고 합니다.
독일에서 온 아재인데 우리네 초등학교?교사입니다.
헥헥거리며 뭔가 먹을 수 있다는 안도감에 방실방실 웃으며 롯지에 들어서니 콩구리츄레이션! 하며 일면식도 없는 저를 맞아줍니다.
눈물날뻔...ㅎㅎ
좀 친해질 겸 해서 몸글리쉬로 억지대화 해보니 안식년 비슷한게 있어 몇년에 한번씩 장기휴가를 준다는군요.
게다가 일정 여행경비도 지원해주고...
참 좋은 나라입니다!
그러고보니 네팔 방문하는 외국인 국적을 조사한 거 본적이 있는데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델란드, 미국.. 이런 나라들이 많더군요.
의외로 인구가 작은 나라들 중에 스위스와 이스라엘도 있더라는...
선입견 및 약간의 경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중국인과 유태인은 절대 여행동행자로 택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저 아재가 쥐고 있는 돌의 용도는 난방용입니다.
다이닝룸의 아궁이나 난로에다 돌 던져넣고 푹 달군 후에 수건으로 감싸서 꼭 안고자면 마누라품 저리가라입니다!
라싸와 가깝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또 많이 멀지도 않습니다.
히말라야 산맥을 넘으면 바로 티벳인데다 랑탕쪽으로 넘어오는 길도 나 있으니...
티벳독립만세!
길고도 짧았던 하루가 끝납니다.
일몰이나 일출은 어디에서 보든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실수를 돌이켜보면서, 내일의 길잡이에 밑거름이 될수 있기를!
어제의 일은 잊고 또다시 시작된 새로운날에 걸맞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아침일찍 롯지를 나섭니다.
조금 가다보니 래서판다 서식지라는 안내판을 보게 됩니다.
래서판다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성격이 포악하고 지나는 이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아주 흉포한 괴수죠!
특히 여행자들과 외진 곳에서 마주칠땐 그 특유의 미소로 사람을 홀린 후 배낭은 물론이고 팬티까지 다 벗겨간다는군요...
내심 조심하자 하면서도 혹시나 마주치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지만...
불행히도 만나지 못했네요..ㅎㅎ
분명 대부분의 땅바닥은 눈밭인데 이렇게 양지바른 곳에는 이름 모를 작은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습니다.
복수초가 문득 생각나네요
아직 봄이 다가오려면 이른 달인데...
무사히 추위와 눈을 견뎌서 따뜻한 봄날에 다른 친구들과 만날수 있기를...
바위에 새겨진 고사인쿤드라는 글자를 보니 잘 가고 있군요.
간간히 나오는 롯지를 제외하고 이렇게 사람이 만든 구조물(룽다와 쵸르텐)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저멀리 가네쉬히말의 산군들이 아득하게 펼쳐집니다.
참고로...
Ganesh III(7043m) 왼쪽 구름에 가려짐.
Ganesh V(6770m) I의 왼쪽 봉우리
Ganesh I(7422m) 가운데 하얀봉우리
Ganesh VII(6676m) 사진 우측의 봉우리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서 이틀전의 소나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얼른 쉽게 갈아입을 수 있게 오버바지와 방수잠자를 배낭 맨 위에다 올려놓고는 비야 올테면 와라 합니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며 뭐라도 먹으려 했더니 또 문닫.
만일 가이드를 고용했다면 문을 연곳과 열지 않은 곳을 비교적 정확히 알수있어 이런 걱정은 안해도 될텐데...
뭐 요런 고민도 여행 중 겪는 하나의 '배고픈 재미'이긴 합니다.ㅎㅎ
먹구름이 몰려왔다가 다시금 파란 하늘이 보일락말락 하면서 사람 애간장을 태웁니다.
비가 오더라도 만반의 준비는 되어있고 눈이 온다면 만세!
불행인지 다행인지 구름은 한참후에 완전히 물러나고 하얀 뭉게구름들만 둥실둥실 떠다닙니다.
라우레비나약(Laurebina Yak 3930m)에 도착해 전망 좋은 곳에 걸터앉아 밀크티 한잔 하는 여유를 부려봅니다.
아직 시간은 이른데 더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중 싱곰파에서 만난 독일아재도 저보다 일찍 도착해서 간편한 차림으로 산책하러 나오네요.
제 배낭을 보더니 힘들지 않냐고? 알유크레이지? 아니냐고 하네요...
하하하하
그저 웃지요...ㅠ.ㅠ
원래 저 장대엔 룽다가 걸려있어야 하는데 바람에 날아갔는지 나뭇대만 덩그러니 솟아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이곳에서는 무려 서너군데의 산군들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볼수 있다는 겁니다.
가네쉬히말, 랑탕히말, 안나푸르나산군들, 마나슬루 지역까지 다 보입니다.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거리로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망원렌즈를 동원할 필요도 없이 눈이 좋고 시야가 맑다면 한자리에서 그 모두를 감상하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제 렌즈가 85mm(35mm기준 128mm)이 최고치인데 많이 아쉬웠습니다.
200mm정도의 줌만 가능해도 아마 산 하나하나를 하나의 프레임에 담을수도 있을듯 합니다..
저멀리 가네쉬히말(Ganesh Himal)의 여러 형제봉들이 서로의 모습을 뽐내며 산아래를 굽어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봉우리는 길을 잃었을때 아주 좋은 이정표역을 해주죠.
방향을 일단 가늠할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아주 많은 도움이 됩니다.
독일아재가 가네쉬히말을 한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각자의 마음에 품은 그 꿈과 기대, 그리고 소망이 같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자리에 같이 서 있다는 것 만으로도 묘한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낍니다.
해가 떨어질수록 그 선명함이 더 커집니다.
아울러 오후볕에 세상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왼쪽부터...
Ganesh IV(7104m)
Ganesh II(7118m)
Ganesh III(7043m)
Ganesh V(6770m)
Ganesh I(7422m)
Ganesh VII(6676m)
오늘하루 묵어갈 별 9개짜리 호텔입니다.
물론 모든 서비스는 셀프이며, 온수따위는 필요도 없습니다!
게다가 이미 향기로운 체취에 익숙해져서인지, 몸이 적응해서인지 샤워안하고 머리 안감은게 꽤 되었지만 더이상 가렵지도 않고 상쾌하기까지...
구름에 휩싸인 봉우리를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어도 너무 좋습니다.
침낭과 세탁 후 덜 마른 양말과 빤스, 그리고 이미 홍어냄새가 진동하는 깔창과 신발을 히말라야의 맑은 공기로 소독합니다.
그동안 저는 의자에 걸터앉아 가네쉬 히말의 봉우리 갯수를 셈니다.
고사인쿤드로 향하는 방향쪽인데 봉우리 이름은 모르겠군요.
롯지주인에게 물어보니 just hill이랍니다.
다른곳에 자리잡았더라면 걸출한 이름이라도 있었을텐데...
해질녘의 붉은 빛이 롯지를 비추는데 마치 금방 불이라도 날것 같은 진한 선홍색으로 물들입니다.
저는 이시간대를 정말 좋아합니다.
아침볕의 그 붉음과는 다른 그 무언가가..
들국화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라는 노래가 문득 떠오릅니다.
이 붉은 빛은 만년설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하루의 끝을 여느때처럼 알려옵니다.
비록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지만 그곳에서 머물렀던 시간과 장면은 마음속에서 영원히 멈춰있네요.
왼쪽부터
Genpo Lirung(6581m)
Mera Peak(6958m)
Langtang Lirung(7234m)
Kyimoshung(6760m)
거무튀튀했던 바위산도 붉디붉은 색으로 물들입니다.
이렇게 하루해가 넘어갑니다.
안녕~
내일 또 보자~
간밤에 오줌누러 나올때 보니 눈이 펑펑내리고 있었는데...
아침엔 눈은 그치고 옅은 구름들이 아침볕을 얇은 커텐처럼 희미하게 가려서 랑탕리룽(LangtangLirung)이 하얗게 반짝입니다.
강렬한 아침햇살을 받아 빨갛게 반짝이는 모습은 못보지만 대신 이렇게 파스텔톤의 옅은 노랑으로 물든 가네쉬히말을 보게 됩니다.
이건 이것대로, 그건 그것대로 마냥 신나고 이쁘기만 합니다.
곧 옅게 드리워진 구름도 조금씩 걷히면서 파란 하늘이 이내 고개를 내밀고, 가네쉬 히말의 산군들은 그 하얀빛을 더욱 발합니다.
여기서 작긴 하지만 안나푸르나도 구경합니다.
참고로 왼쪽부터
AnnaPurna IV(7525m)
Annapurna II(7937m)
Boudha Himal(6672m)
Himal Chull(7893m)
Ngadi Chull(7872m)
Manaslu(8163m)
이렇게 멀리서 저 봉들을 볼수 있다는 것으로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얼마나 거대하게 솟아있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무지개라고 해야하나 채운이라고 해야하나...
가끔씩 이렇게 구름이나 안개에 있던 수증기에 빛이 산란해서 무지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좋은 징조임에 틀림없다!
오늘 예정지는 고사인쿤드 마을까지라서 비교적 짧은 거리인데다 날도 좋고해서 그야말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가네쉬히말을 보면서 유유자적 천천히 갑니다.
랑탕리룽이 바라보이는 곳에 작은 돌탑이 하나 있습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텐데 뭐에 이끌렸는지 한번 다가가봅니다.
In the memory of late Mr. Choi Yun Jin(Korea)
Boundary less sherpatrekking
Kusang sherpa.
작은 불탑에 걸려있던 타르쵸가 히말라야의 매서운 바람에 닳고 헤져서 많이 낡아 너덜너덜해졌지만...
그 닳아 없어진 만큼 거기에 깃들어 있던 소망들이 바람에 실려 하늘로 하늘로 올라갔으리라...
경사가 그리 심하진 않지만 고도탓인지 점점 몸이 힘들어하는 것 같지만 주변풍경을 보거나 사진을 찍을때면 멈춰서기 때문에 몸에는 큰 무리가 없네요
랑탕리룽은 여기를 끝으로 더 이상 못봅니다.
아니 못본다기 보다 이렇게 멋지고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해야하나...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고사인쿤드를 지나면서는 주변산에 가려져 안보이게 되더군요.
가네쉬히말은 계속 볼수 있어 다행입니다.
설렁설렁 가다보니 첫번째 고사인쿤드 호수가 나타납니다.
사진속의 호수 위쪽 검은 바위들 아래를 잘 살펴보시면 하얗게 길이 나있는게 보이실겁니다.
아찔하게 보이는데...한번 도전해보고 싶군요!
봄날 이후에는 물이 가득차지만 역시 겨울이다보니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혀 있습니다.
산허리를 깍아만든 좁은 길을 따라 오르막길을 끝도 없이 올라갑니다.
가늘게 이어짘 저 길이 끝나고 고개를 넘으면 드디어 고사인쿤드 마을에 도착하게 됩니다.
두번째 호수에 도착했습니다.
첫번째 호수에 비해 크기가 훨씬 큰것 같습니다.
이제 세번째 호수만 남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쿰부히말의 고쿄에 갈때도 세개의 호수를 지나죠...
지나온 길들이 구름에 뭍혀갑니다.
여기선 구름과 같은 높이에 있는 경우가 다반사로 생겨서 이젠 그리 놀랍지도 않습니다.
고사인쿤드의 세번째 호수이자 마을에 도착 후 가장 큰 롯지에 짐을 풉니다.
삶은 감자 몇개 먹는 것으로 우선 배를 채운 후에 랜턴, 물, 쵸코바,카메라를 챙겨 마을도 둘러볼 겸 해서 나옵니다.
새님 : 뭘봐 임마! 가진거 다내놔!
배추 : 드..드리겠습니다!
라는 눈빛입니다..
호수를 한바퀴 도는 중인데 오호호호 이거...너무 만만하게 봤습니다.
우리네 둘레길 정도로 생각하고 나왔는데 실제로 호수 둘레가 좀 큽니다. 아니 많이 큽니다.
이게... 직선으로 보이는 거리랑 원주율 곱해서 둘레를 걷는 거리랑 원래 차이가 나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제법 되는데다 그냥 호수 둘레나 표면이 하얗게 보이길래 푹신한 눈밭만 상상했는데...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길도 안나있고 종아리 정도로 갑자기 푹푹 들어가는 눈구간이 많아 애 먹습니다.
이제 겨우 반바퀴 돌아 마을을 담아봅니다.
괜히 왔다는 생각도 좀 들고 그냥 가로질러 가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얼음상태나 수심도 모르는데 너무 무모한 생각이라 그냥 얌전히 울퉁불퉁 푹푹 빠지는 길을 따라 나머지 반바퀴도 걷습니다.
마을 뒷편의 타르쵸가 나부끼는 곳을 보니...
뭐가 보일진 모르겠지만 당연히 올라가봐야겠죠?
아래에서 볼때는 몰랐는데 막상 올라가보니 경사가 꽤 있습니다.
게다가 고사인쿤드 해발이 4,380m이니 여기서 더 올라가는 것이므로 혹시나 있을 고산병에 대비해 천천히 올라갑니다.
고사인쿤드 2번 호수에 몽실몽실 구름이 피어나네요.
고사인쿤드 1번 로수와 마을의 모습입니다.
마을이 언덕배기에 자리잡고 있어 상대적으로 호수가 작아보이는 착시가 생겼네요.
이제 거의 다 올라왔습니다.
고도탓인지 숨이 차오릅니다만 묘한 쾌감도 일어나고 어떤 풍경을 보게 될까하는 흥분감에 아드레날린도 마구마구 분비되는것 같네요.
첫번째 허수와 두번째 호수가 반정도 보이는군요.
가네쉬히말 쪽으로는 구름이 덮어버려 아쉽게도 조망할수 없습니다.
마치 타래에서 흘러나온 한가닥의 실처럼 하얀눈밭에다 자국을 만들어 놨습니다.
그 시작은 어디이고 끝은 어디일까요...
당연히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볕이 잘 들고 바람을 막아주는 곳에 먼저 온 손님이 있네요.
이 독일 아재는 다른 트레커들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비수기인데다 고사인쿤드/헬람부는 별로 인기없는 코스이다보니 트레커들도 뜸한데 여기로 왔다는 것도 그렇고 여기저기 쏘다니는 성향도 비슷하고 때로는 차한잔에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여러모로 마음에 듭니다.
뭐하고 있었는지 물어보니 볕 쬐면서 책 읽고 있었다고 하네요.
멋짐멋짐합니다!
저는 무게때문에 책이라곤 론니플래닛밖에...
등산브랜드 잘 아시는 분들, 이 독일아재가 입고 있는 바지랑 신발이 뭘까요?
가죽장갑도 그러고보니 탐나네요!ㅎㅎ
여전히 가네쉬 히말쪽은 구름에 쌓여 그 모습을 아쉽게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고사인쿤드 2호수 전경입니다.
호수아래 머물러 있던 구름이 금새 위로 솟아올랐네요.
고사인쿤드 1호수 전경입니다.
아.. 저 둘레를 보니... 두 번 돌아보고 싶진 않군요..
하늘이 열리는가 싶더니 또 구름에 휩쌓이고...
아무래도 오늘은 가네쉬 히말을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래로 내려다보는 고사인쿤드의 하얀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은듯 합니다.
내려가기전에 마지막으로 고사인쿤드 호수를 한번 더 담아봅니다.
이제는 내려가야 할 시간이네요.
샤브루베시를 출발해 지금껏 다니면서 두통은 없었는데 웬일인지 머리가 조금 아프기 시작합니다.
보통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서의 두통과 메스꺼움은 고산병의 시작을 알리는 증상인데...
약간의 불안감을 안은 채 마을로 내려갑니다.
제 발자국이 고이고이 찍혀있네요.
일몰은 보지 못하지만 내일 아침 일출이 정말 멋질 것 같아 미리 예약했습니다.
허나 결과적으론...
독일 아재는 먼저 내려와서 롯지앞의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네요.
참 멋짐멋짐한 여행을 즐기고 있는듯 합니다.
롯지에 들어가서 아스피린 한알 먹고는 좀 쉬다가 저녁을 먹었습니다.
이때까지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밤에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는데 몸이 대처하지 못해서인지 새벽에 일어나려고 하니 천근만근의 무게로 바닥이 잡아당깁니다.
아...
다행히 고산병은 아닌듯하고 감기몸살로 의심되서 약먹고 일출은 포기합니다.
대신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침낭에 파뭍고는 최대한 체온을 유지하며 이 몸살기가 가시길 기다립니다...
긴글과 사진 보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편도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표기된 지명이 틀린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지적해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3부예고)
알바란 무엇인가, 척박한 땅을 일구는 사람들, 그리고 랑탕트레킹의 끝이자 안나푸르나로의 새로운 시작!
30
추천하기
다른의견
0
|
이메일
카카오톡
라인
밴드
X(트위터)
페이스북
54
핏짜
0
0
|
아 좋습니다. 전 사실 지리산 정도 거리의 원정 산행도 썩 즐겨하지 않습니다. 이동하는 시간이 아까워서입니다. 그래도 지리를 오르다 보면 감탄만 연발하며 오르게 되죠. 해서 해외 원정은 아예 생각도 않고 있었습니다만 사진을 보다 보니 장기간 계획하고 가면 실컷 감탄하고 다녀 올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하하 잘 봤습니다.^^ |
배추장사
0
0
|
이건 사실 매우 가끔씩 일러나는 일탈일 뿐이고 실제론 저도 다큐나 여러 책을 보면서 침만 흘립니다.. 만일 가신다면 네팔분들에게도 호보법을..^^ |
배추장사
0
0
|
만년설 아랫자락에 있을때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론 비슷비슷하죠... 대신 활엽수가 거의 없는 침엽수 식생이라는 것과 수목한계선 지역이 많다는 것만 빼면 지리산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곳이 있...^^ |
전체 코멘트 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