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 함께 한 속리산 상학봉 묘봉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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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함께 한 속리산 상학봉 묘봉 산행 ²⁶
azaz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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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018-09-27 08:52 조회 :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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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산행 후기를 남깁니다. 그 동안 예전같이 산행을 많이 하지 않은데다 올해는 뜻밖에 “귀차니즘”이 많이 생겼네요.

2년 전 10월에 부모님, 여동생과 덕유산 종주를 한 후로 그 깊은 감흥을 잊지 못해 “다음에 또 가자”는 약속을 하고는 어느새 2년이 흘러 버렸습니다. 세월은 그야말로 쏜 살과도 같습니다. 작년 이맘때 아버지는 젊었을 적에 몇차례 갔었다는 속리산의 상학봉, 묘봉 산행을 제안했었는데 여러 사정들 때문에 작년에는 결국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추석을 맞아 아버지가 다시 산행 제안을 해서 이번에는 아내와 두 아이들도 함께 하기로 했는데 아내가 속리산 문장대를 가 보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속리산이 낙점이 되었고 다만, 문장대가 아닌 상학봉과 묘봉을 점찍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문장대 보다 낫다는 말로 흔쾌히 오케이를 했습니다. 이렇게 3대가 함께 하는 산행 약속이 잡혔고 여동생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부모님은 젊었을 때 전국의 산을 누비고 다녔었지만 2001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할아버지를 챙기시느라 등산을 다니지 못하게 되었고 3년 뒤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후에도 예전처럼 다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점점 연로해지셨고 어느 덧 아버지가 여든 하나, 어머니가 일흔 넷이 되었습니다. 등산은 이제 추억거리로만 남게 되었는데 2년 전 덕유산 종주를 한 후로 다시 자신감이 붙으신 모양입니다. 특히 어머니는 젊었을 때부터 작은 체구의 여자가 다람쥐처럼 산을 잘 탄다고 주변에 명성이 자자했었는데 여전히 그 날렵하고 거뜬함을 보여주셨습니다. 1976년 8월 25일 두 분은 설악산 비선대에서 1박을 하고 대청봉을 올랐다고 합니다. 이 때 대청봉에서 음료수를 팔던 아저씨가 말하길, 여자가 대청봉에 올라온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다고 했다는 군요. 당시만 해도 그랬었나 봅니다. 아버지는 그야말로 요새 말로 치면 등산 매니아였는데 이젠 동네 근교 산행도 힘에 부쳐 할만큼 기력이 쇠해졌습니다. 2년 전 덕유산 종주 산행 마지막 육십령 하산길에 매우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고 다시는 이런 극한적 산행은 절대 잡으면 안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선제안을 적극 수용했는데 이 날의 속리산 상학봉, 묘봉 산행은 부모님께 대만족을 주었지만 연로하신 부모님과 어린이를 데리고는 다시 오지 못할 최악의 험지 탐방지로 각인이 되었습니다.

두 분이 예전에 묘봉을 올랐을 적에는 늘 신정리를 들머리로 해서 미남봉을 거쳐 상학봉, 묘봉까지 왔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곤 했었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요즘 같은 계단이나 밧줄, 펜스 같은 것들이 없어서 매우 위험한 곳으로 인지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겨우 초등학교 3학년, 1학년 손자들과 함께 하는 산행인데 묘봉을 제안하셨을까요? 오래 날의 속리산 묘봉 산행은 아름다운 경관속에 황홀경을 맛보았던 훌륭한 기억으로 자리 잡아 위험한 곳들의 기억은 순간순간 큰 무리없이 지나칠 곳으로 상쇄되어 묻혔던 것입니다. 나중에 비로봉을 지날 무렵부터 시작되는 밧줄구간과 절벽이 나왔을 때는 어머니는 탄식을 절로 뱉어 냈습니다. “아이고, 이 정도면 아이들 데리고 안되겠다. 돌아가자.” 어머니는 산행을 마치고 나서 안 그래도 어제 밤에 아무래도 아이들에게는 너무 위험한 생각이 들어 꾀병을 부려서 못 간다고 할까 했다고 말했습니다.

상학봉~묘봉 산행 코스가 어떤지 간단하게 표현해 보자면 초등학생을 데리고 가기에는 매우 위험한 건 사실입니다만 등산을 자주 하는 성인 기준으로는 조심해서 갈 만한 다이나믹하고 재미난 코스 정도로 보면 됩니다. 줄 잡고 이동해야 하는 수직 강하 구간, 아찔한 절벽 구간, 좁은 바위 틈을 기어야 하는 구간들이 꽤 나오기 때문입니다. 산행을 하다 보면 언제나 그렇 듯 모르고 여기까지 왔지, 알았으면 안 왔을 코스(아이들 기준)가 많이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산행은 올 1월에 설악산 울산바위 이 후로 오랜만이었습니다. 이 녀석들을 산에 처음 데리고 간 곳이 3년 여 전에 마니산이었고 이 곳에 후기를 남긴 것이 엊그제 같은데 다시 한 번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이 후로 이 녀석들은 한라산, 설악산, 지리산, 덕유산, 소백산, 함백산 등등 굵직한 산들의 정상을 밟았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이 된 녀석들은 아빠는 왜 주말마다 우리를 데리고 가냐고 투덜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말에 친구들하고 파자마 파티를 원한다든가 놀이터에서 온갖 놀이를 하면서 노는 것을 더 원하기 시작하던 차 추석을 맞아 할아버지, 할머니와 등산을 가자는 제안에는 흔쾌히 수락을 해주었습니다.

아내는 “힘든” 등산을 왜 하냐는 식의 원초적 불평을 하곤 했지만 막상 등산을 가자고 하면 항상 내심 좋아하는 빛을 역력히 드러내 왔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묘봉 코스가 국내 최고의 험지 중 하나인데다 오랜만의 등산이라 아내는 힘들어 했습니다. “내가 가보고 싶은 속리산은 문장대였다고!”라는 말로 힘듦을 표현했습니다.

동생은 최고의 스킬을 가진 정예 요원과도 같았습니다. 덕유산 종주 때 척척 가는 모습을 보고 뜻밖이었는데 그 산행 실력이 어디 가지 않네요. 상학봉 전후의 최고 험지를 날쌔게 돌파해 나갔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종종 동생이 초등학교 5학년 때 태백산을 데리고 간 일화를 얘기하면서 대단하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당시 대전에서 7시간 버스를 타고 갔는데 차멀미로 버스에서 구토를 하고 맥없이 늘어지는 것을 보고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원기회복하더니 앞장서서 태백산을 팍팍 오르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리고 돌아와서도 그 아름다운 경관에 감탄하고 심취해 했습니다. 우리 모두 동감을 했습니다. 명산을 찾는 이유가 이런 감흥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것 때문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는 근래 가장 유쾌한 기분이었다면서 심지어 다음과 같은 한시를 지으셨습니다.(即吟)

昨夜看月是中秋 : 어제의 보름달은 중추절이라오.

今日圍處都神仙 : 오늘 둘러싼 이곳은 모두가 신선세계일뿐.

陟彼峻峰亦有行 : 높은 준봉을 오르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란 걸.

百爾所思不如我 : 모두의 생각도 나의 이런 행동보다 못할 수 있지.

一步一步更加步 : 한 발 한 발 오르면서

辛苦爬行却仙境 : 힘든 등정길에 문득 펼쳐지는 신선의 경지,

仙風道骨吾豈敢 : 신선과 도인의 풍격을 내 어찌 흉내내리.

美麗妙處俗離山 : 아름답고 그윽한 멋진 곳 속리산이라네.

2018년 9월 25일 상학봉, 묘봉 등행을 마치고. 유당

사진과 함께 현장의 생생함을 좀 더 소개합니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대전에서 운흥리까지 이동했습니다. 주차를 하고 나니 산악회 버스가 곧 도착해서 한무리의 등산객들을 쏟아 놓았습니다. 운흥리 마을 등산로 길목에 국립공원 직원이 예약 유무를 묻고는 안했으면 현장 등록을 해야 한다며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습니다. 내년부터는 예약제를 확대한다고 하네요.

시작은 완만하게 오르기 시작해서 아버지는 기분 좋은 출발이라고 말했습니다. 약 1시간 정도 꾸준히 올라 능선에 이르렀습니다. 우측은 미남봉으로 향하며 우리는 좌측으로 가야 합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싸온 송편을 먹으니 뒤이어 다른 등산객들이 올라와 숨을 골랐습니다. 그 중 어떤 아저씨가 아이들보고 “할아버지 짐을 젊은 너희들이 지어야지”라고 농을 건네니 초등학교 3학년인 큰 아들이 1학년인 지 동생에게 “니가 더 젊으니 니가 짊어져”라고 농을 되받아 칩니다. 한바탕 웃고 다시 진군합니다.

조금 지나면 거대한 바위가 나오는데 바위 꼭대기에는 마치 석모도의 눈썹바위 마냥 넓직하고 큰 바위가 얹어져 있습니다. 거길 지나쳐 오르면 드디어 조망이 터집니다. 멋진 미남봉과 능선이 앞에 보이고 우측 멀리는 덕가산이 보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가는 곳곳 절경이 펼쳐집니다. 아이들이 배고파해 계획했던 것 보다 좀 이른 11시 40분 경 점심을 먹었습니다. 어머니가 준비하신 밤을 넣은 밥, 두부조림, 더덕구이, 김치, 백김치, 물김치를 먹었는데 이 보다 맛있는 밥은 세상에 없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아름다운 풍광에 도취되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비로봉을 지나면서 위 사진과 같이 아찔해 보이는 수직 강하 구간을 만났는데 이 때부터 가슴 떨리는 구간들이 곳곳에 등장했습니다. 팻말에는 "추락주의" 그리고 주의 집중 구간이라고 씌여 있었습니다. 계속 앞서 가던 동생과 아이들을 세우고 먼저 내려가서 발 디딜 곳을 지정해 놓고 한사람씩 메뉴얼처럼 딛고 내려와야 했습니다. 끈이 묶인 나무에서부터 아래를 내려다 보면 아찔합니다. 왼쪽 바위뒤 우회로로 돌아오면 밧줄의 중간 지점 정도 되는데 거기서부터도 성인의 키 높이 이상 뚝 떨어지는 곳입니다.

고비를 넘겼다 싶으니 곧 이어 둥그스럼한 커다란 바위길이 나오는데 조금만 우측으로 발을 디디면 아득한 낭떠러지입니다. 바위를 끼고 바위에 붙어 있는 줄을 잡고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 올라서야 하는데 진입하기 전의 광경은 정말 아찔한 느낌을 줍니다. 위의 사진 좌측 하단이 바로 그 길인데 사진으로는 표현이 제대로 안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여기서 되돌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선 제가 먼저 절벽 위치로 가서 줄을 잡고 아이들을 제 품 안쪽으로 줄을 잡고 지나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이 통과하고 나니 어머니는 안심이 된 듯 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입장에서 너무 아찔해서 이 이상의 험지는 없으리라 확신했습니다. 이 후로도 몇몇 험한 곳들이 나오긴 했지만 무난했습니다.

통천문도 나옵니다. 줄잡고 거의 수직으로 내려갑니다. 바위틈이 좁아 큰 배낭을 매면 배낭을 다 긁히기 십상입니다.

통천문을 나오자마자 천길 낭떠러지. 펜스가 있어서 괜찮습니다.

바위 동굴길도 나옵니다.

다시 탁트인 절경이 펼쳐집니다. 문장대가 더 가까이 보이기 시작하고 가야할 능선이 펼쳐집니다.

1시 50분경에 상학봉에 도착했습니다. 아내는 너무 힘들어서 이 곳이 상학봉이었는지도 몰랐다고 했습니다.

맨 후미에 뒤쳐져서 오던 아내가 길을 잃고 헤맸다는 곳. 길은 외길이어서 길을 잃을리가 없다고 면박을 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맨 뒤에 떨어져서 겨우 겨우 따라오던 아내가 이곳에 이르러서 설마 이 좁은 바위틈이 길인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합니다. 뒤 이어 오던 다른 등산객이 지나는 것을 보고 따라왔다고 합니다.

꼭대기에 소나무 옆에 선 바위가 인상적입니다.

묘봉에 거의 도착을 했습니다. 계단 경사가 매우 급해서 아이들도 어머니도 네발로 기어 올랐습니다.

묘봉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묘봉에서 본 문장대.

구비구비 넘어온 봉우리들. 묘봉에서 본 풍광은 사진으로는 표현이 안될 정도로 깊은 감흥을 주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절경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북가치를 거쳐 운흥리로 왔습니다. 어머니는 묘봉을 오르기 직전 만난 딸 벌의 아주머니로부터 어르신이 아닌 "언니" 호칭이 적당하다는 유쾌한 이야기를 듣고는 기분이 좋다 하셨고 사진을 보면서 한편의 영화를 본 것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름다운 상상이 펼쳐진다면서 훌륭한 산행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과 우리가 지나온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2018-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