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한 1박 2일 설악산 산행 (2018-10-1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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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한 1박 2일 설악산 산행 (2018-10-13~10-14) ⁵⁴
azaz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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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2018-10-19 12:08 조회 : 2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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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쾌청한 날들 속에 가족들과 설악산에 다녀왔습니다. 약간 늦은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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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문득 공룡능선에 가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작년 말 회사분들과 공룡능선을 다녀온 뒤로 이어져 왔었는데 지난 달 초에 했던 설악산 가을 추첨제 때 운 좋게도 대피소 당첨(더구나 최고 절정기인 10월 중순 주말)이 되는 바람에 전격 공룡능선 산행 결정이 되었었습니다.

다만 오해하지 않아야 할 부분은 이 제안이 아내가 많은 산행 경험을 통해 발현된 것이 아니고 그 동안 아내 앞에서 2번의 공룡능선 경험을 포장해서 설파한 것이 그저 아내의 마음을 움직였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2년 전 10월 당시 8살, 6살이던 아이들을 데리고 천불동 계곡을 오를 때 대청봉이 아니라 공룡능선으로 방향을 바꿀까 생각했었을만큼 아이들이 잘 따라 주었었는데 이제 이녀석들이 10살, 8살이 되었고 2년새 꽤 험난한 산들을 곧 잘 올랐었기에 이제 가족과 함께 공룡능선을 가볼만도 하겠다 싶었습니다.

아쉬운 부분은 희운각대피소가 보수공사로 폐쇄되면서 예약된 소청대피소를 거쳐야 했었던 점인데, 결론적으로 이 공룡능선 산행 계획은 실패했고 산행 당일까지도 철저하지 못했던 점들을 깨달으면서 공룡능선 전체 구간을 포기하고 무너미고개에서 시작하는 능선의 초입부 신선대까지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2년전 다녀왔던 코스의 반대에 공룡능선 신선대를 추가한, 즉 오색-대청봉-소청대피소 1박-희운각-공룡능선 신선대-무너미고개-천불동계곡-소공원 으로 총 21.5km 를 무사히 완주하였습니다.

첫째 날.

게으름의 나비효과 – 여러 차례의 경험으로 좀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대피소 예약이 되어 있기에 대피소에 6시까지만 도착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출발 당일인 토요일 아침에 좀 여유를 부렸습니다. 기상도 생각보다 늦었고 냉장 음식들 때문에 패킹을 아침에 하니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고 결국 출발을 오전 8시에나 할 수 있었습니다.

청명한 가을 날씨의 주말 오전은 모든 도로를 행락객들의 차로 뒤덮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서울 양양 고속도로의 춘천까지 구간을 피해 44번 국도로 들어섰는데 초입까지 꽤 막혔고 설악동에서는 무지막지하게 막혔습니다. 설악동에 주차를 하고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설악동 C지구에서부터 차가 정체된 채로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6시까지 대피소 입실을 해달라는 문자에 1시간 정도 늦어질 것 같다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근 30분을 제자리에서 허비하고 마음이 다급해져서 오색으로 차를 돌렸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오색도 주차 사정은 비슷할 것 같아 다시 차를 돌려 급한대로 유스호스텔 인근의 주차공간을 찾아 헤맸습니다. 어떤 친절한 숙박업소 주인께서 고맙게도 아이들과 잘 다녀오라며 이틀간 주차공간을 내어주시면서 콜택시 번호까지 안내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택시를 타고 오색 남설악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 30분.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국립공원 직원분이 어딜 가려고 하느냐고 묻습니다. 소청대피소 예약이 되었다고 말하고 들어서려고 하니 입산은 1시까지라고 하면서 막아섭니다. 대피소 예약이 된 경우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니면 별 말 없이 보내 주곤 하는데 이 분은 굉장히 단호했습니다. 대피소에도 미리 1시간 정도 늦을 거라고 통보를 했다고 하니 그것은 대피소쪽과의 얘기고 입산해서는 1시간만에 가든 알아서 하시면 되고 본인 입장에선 무조건 정해진 입산 시간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입구의 CCTV에 입산 시간이 기록이 되고 사고가 나는 경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좀 빡빡하게 느껴졌지만 틀린 말은 아닙니다. 늦게 오르게 된 부분에 대해 사과를 드리고 그 분의 고언을 듣고 나서 겨우 오색 문턱을 지날 수 있었습니다.

지겨운 오색길 - 2년전 돌계단을 끊임없이 내려오면서 아내가 학을 떼었던 곳. 오르막이니 그 때 보다는 괜찬을 거다라고 격려를 해주었지만 이 길은 내리막이든 오르막이든 극악의 길 중의 하나입니다. 아이들에겐 투정 지수를 고조시키는 길 중 하나고요… 더구나 공룡능선 산행을 염두해 두고 우리 부부는 온갖 먹을 거를 배낭에 넣어서 제 배낭 무게만 18kg이나 되었습니다. 아내 배낭 무게는 재진 않았지만 아내 배낭도 꽤 무거웠고요. 워밍업이 되기 전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오르면서, 그리고 자주 산행을 해오지 않은 아내가 축축 처지면서 공룡능선을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어찌나 힘이 들었던지 배낭 속 과일 일부를 버리자고까지 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간다는 핸디캡을 인정하며 평소 집에서 보다 착하게 굴었는데 엄마가 자꾸 처지자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중턱부터는 재미있는 영화 얘기를 해주었는데, 괴물과 외계인 같은 아이들이 관심가질만한 소재 리들리스콧 감독 시고니위버 주연의 에일리언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탐 크루즈 주연의 우주전쟁을 아주 자세하게 얘기해주었습니다. 마치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에게 옛날 얘기를 해 줄 때 귀를 쫑끗 세우고 듣는 것처럼 아이들은 저의 영화 얘기에 몰입했습니다.

맑은 하늘이 흐려지더니 안개가 자욱해집니다. 날씨가 급변하는가 싶었는데 구름층을 통과하는 시점이었습니다. 조금 더 오르자 구름이 아래로 보이고 서쪽으로 기우는 햇빛에 구름이 붉게 물듭니다. 드디어 대청봉. 도착한 시간은 6시 20분경으로 오색에서 4시간 50분 정도 걸렸습니다. 오색코스로 오르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죄다 내려오는 사람들 뿐이었는데 그나마 5시 이후로는 내려오는 사람도 없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해는 이미 기울어 대청봉에는 깜깜해지기 일보직전이었는데 마침 사진을 찍고 있는 딱 한무리의 산행객들이 있어서 정상석과 함께 우리 가족의 사진 한장을 극적으로 건질 수 있었습니다.

지겹고 힘든 오색 등산에 대한 보답으로 생각했습니다. 서쪽 하늘 마루금으로 넘어간 해에 의해 선명히 그어진 붉은 빛줄기는 황홀했습니다.

금새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리고 랜턴을 켜고 소청대피소로 향했습니다. 중청을 지나 소청 삼거리를 지나면서 본 밤하늘의 별들 또한 대단했습니다. 평소 도심에서 구경할 수 없었던 별들의 향연속에 아이들도 감탄해 했습니다. 별자리에 대해 모르지만 그래도 알고 있는 별자리들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오리온 자리 등을 가리키며 설명해주자 책과 천문대의 가상 천구에서만 봤던 별자리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습니다.

소청대피소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7시 30분. 원래 계획보다 1시간 30분 늦어진 시간입니다. 아내는 기대했던 것보다 시간이 오래걸리고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정도라면 공룡능선은 도저히 완주를 못하겠다고 해서 여기서 공룡능선은 깨끗이 포기했습니다. 아이들은 베이컨, 김치 2가지로 햇반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9시 소등 후 이어폰을 꽂고 누군가의 코고는 소리를 코러스 삼아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았습니다.

둘째 날.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하고 5시경 나섰습니다. 의외로 아이들이 일찍 자서인지 불평없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여전히 반짝거리는 별들을 보며 소청삼거리에 이른 후 곧이어 희운각 대피소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서리가 내린 바위는 미끄러워 조심스럽게 지났고 어느새 어디서들 왔는지 꽤 많은 사람들이 새벽같이 분주히 움직이는군요. 희운각을 향해 내려가는 중간에 일출을 맛보았는데 동해의 붉은 태양 앞에 낮게 깔려 있는 구름이 빛을 가리면서 흑색으로 보이고 위는 붉게 달아 오른 것이 마치 해질녘의 산릉선 같아 보이기도 했고 금새 변하는 구름에 둘째 아들이 ‘악어 같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마침 곁을 지나치던 분이 딱 악어 모양이라고 하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드디어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아이들도 아내도 난생 처음으로 산에서 보는 일출에 감탄스러워 했습니다.

희운각으로 향하며 보는 공룡능선의 전경이 낮은 색온도에 의해 붉으스름한 것이 따뜻한 느낌으로 비춰졌습니다. 좀 앞서서 내려가서 아내가 내려오길 기다리며 위를 보고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돌계단에서 2바퀴 정도 굴러서 넘어졌는데 구를 때 다행히 배낭이 커버를 해서 크게 다치지는 않은 듯 했습니다. 가파른 돌계단길로 조심스레 내려가야 하는 구간입니다.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해서 컵라면과 김치, 과일, 그리고 스테이크를 구워서 아침을 해결했습니다. 공룡능선 신선대까지만 가보기로 하고 다시 나섰는데 많은 분들이 아이들을 보고 놀라워했습니다. 아이들과 신선대까지만 간다고 했는데도 아이들을 추켜 세워주었습니다. 신선대 앞단의 바위 절벽길을 무사히 통과하고 신선대에 이르렀을 때 아내는 최고의 감탄사를 내뱉었습니다. 저도 공룡능선을 2번 가봤었는데 이번만큼 구름 한점 없이 쾌청한 날은 처음이었습니다. 선명하게 펼쳐진 공룡능선의 위용은 사진으로는 절대로 표현해내지 못할 그것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11번째만에 처음으로 이런 날씨를 경험한다고도 했습니다.

아내는 1시간 정도 경치를 감상하다 가자고 했지만 아이들이 보채는 바람에 왔던 길로 하산을 했습니다. 내려가면서 맞은편에서 오던 분이 절벽의 줄이 끝날 무렵 뱀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일러주어서 주의 깊게 살피면서 내려갔는데 정말로 그 지점에서 작은 뱀이 낙엽사이로 나오긴 했는데 자세히 보니 도마뱀이었습니다.

무너미고개까지 돌아와서 이제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을 합니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길고도 긴 하산길인데 천당폭포 전 후로 절정의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단풍이 햇살을 받아 빛을 내는데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2년전에 오후 늦게 오르며 보았던 그늘속의 천불동 계곡과 햇살속의 계곡의 모습은 천양지차였습니다.

오랜 시간 머물면서 그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아쉬웠습니다. 소공원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C지구의 유스호스텔 인근으로 갔는데 만원씩이나 받더군요. 하지만 피곤한 우리들은 아랑곳 않았습니다. 택시 기사 얘기가 1~2시간 전까지만 해도 매표소 입구에서 설악동 빠져나가는 것만 1시간이 걸릴 정도로 붐볐다면서 이제서야 길이 트인다고 했습니다. 그 만큼 주말동안 엄청난 사람들이 설악산을 다녀갔나 봅니다.

돌아오면서 모두들 힘들었지만 좋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큰 아들이 다음번에는 지리산 노고단을 다 함께 가자고 하는데(2년전 여름 아빠와 단 둘이 다녀온 노고단의 기억이 너무 좋은 나머지 노고다 얘기를 자주 합니다) 아내는 역시나 더 이상 힘든 산행은 싫다면서 엄살을 부렸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틀간의 산행을 아이들과 아내와 리뷰하면서 다음을 기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