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글 어차피 다 보이니까 보셨다는 전제하에 그냥 사설 풀자면 저 그렇게 고교 마치고 나름 엄청나게 노력했어요. 20대 중후반 늦은 나이에 대입도전해서 비교적 높은 점수로 붙었고요. 4년 동안 성적장학금 한번도 안놓쳤어요. 대학졸업장에 최우등(학점 4점대) 찍혀 있어요. 교수님께서 제가 논문 쓰는데 재능이 있다고 석사 안해보겠냐고 제안도 해주셨고요. 미국인 교수님들도 저 좋게 보시고 유학내지는 최소 교환학생이라도 생각없냐고 물어보셨어요. 사정상 가진 못했지만... 어쨌든 제 인생에서 그나마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거 같아요. 10대 망친거 대학에서라도 전부 만회하고 있다는 자기효능감에 들떠 있었어요. 근데 동기들이 다들 한참 동생이라 교우관계에서 외연확장을 하는데 한계가 있었던거 같긴 해요. 몇몇 친한 애들끼리만 제한적으로 소통했거든요. 아무래도 우리나란 또래문화가 강하니까 동기들보다는 저랑 연배가 맞는 소위 화석들이랑 친해지는 경향이 있었어요. 졸업후 3~4년 정도까지는 걔들이랑 계속 연락도 하면서 잘 지냈어요. 그리고 저도 취업이란걸 했었습니다.

근데 회사생활 그리 길게는 못했어요. 회사 동료, 선배들이랑 사우나 갔다가 고딩때 매맞고 살점 다 떨어진 흉몰스런 엉덩이 들켰거든요. 눈에 확 띄니까 묻더라고요. 제딴엔 솔직하게 그냥 사실대로 얘기했어요. 나름 엘리트코스 밟은 선배들인데 갑자기 저 사람으로 안보더군요. 좋은 회사였는데 소문 날까봐 그냥 나왔어요. 그나마 인생에 자신감이 조금 붙기 시작할 때였는데 어려서 개판으로 산게 결국 발목잡는구나 싶었어요. 퇴사후 재취업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2010년대 말~20년대 초부터 학폭이니 일진이니 이런게 엄청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수면위로 오르더라고요. 멘붕에 신경쇠약이 도졌어요. 그때부터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알바나 다니면서 폐인이 됐어요. 모아둔 목돈이 좀 있었는데 자영업이라도 해보려고 생각했다가 때마침 또 코시국이라 가게들 싹 망하는거 보면서 두려움에 아무것도 못했어요.

그리고 지금 몇년째 폐인이에요. 웃기죠.. 소설같죠 ㅠㅠ 저도 제 인생이 소설이면 좋겠어요. 나름 영어능력도 좋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회화도 제대로 안돼요. 머릿속에 지우개가 생긴것 같고 브레인포그가 극도로 심해졌어요. 이게 다 이놈의 엉덩이 때문이라고... 탓을 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통증장애가 있다보니 업무능력이나 학습능력도 저하되기 일쑤였죠. 기어이 이게 내 발목을 잡는구나 싶었어요. 근데 조금만 자기객관화를 해보면 사람들 조언이 맞아요.

전 피해친구들한테 용서받았으니까 됐다고 생각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 용서는 형식상의 용서였어요. 제겐 반성이 없었고 부족했어요. 그렇다고 이제와서 20년 지난 일로 그때 학우들 찾아갈 면목도 없었어요. 저한테 고등학교 졸업장은 흑역사고 수치였기에 그냥 분리수거함에 던져버린지 오래였어요. 그때 선생님 친구들 제가 찾아가면 안되기도 했구요. 무엇보다 학폭가해자는 트라우마를 잊고 '살 수도 있는(may 개념일 뿐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확정할 수 없단 것도 알아요)' 학폭피해자를 찾아가선 안되고 그게 오히려 불쏘시개가 된다는 주변 조언도 많았어요. 저도 거기에 동의하고요. 지금 몇년째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자꾸만 더 폐인이 돼 가는 기분이에요. 발버둥칠수록 더 집어삼키는 거대한 늪에 빠진채 고립된 느낌이에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무엇부터 잘못된 걸까... 어느 지점에서 픽스해야 선순환으로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 어쩌다보니 나이먹고 이력도 단절돼서 이제 재취업은 불가하고 그나마 회사다니면서 최상위 신용카드 발급요건 갖췄을때 만든 신용등급(점수)은 아직 그대로인데 한정된 자본으로 가급적 부채없이 뭘 할 수 있을까... 자진 긴축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살고 있어요. 그냥 모르겠어요. 오른쪽 엉덩이는 치료가 불가능한거 같아요. 신경차단술이 통하지 않으니 딱히 방법도 없더라고요. 가까운 사람들한테는 왼쪽 엉덩이라도 남은걸 다행이란 말만 지겹게 들었고(저한테는 가장 상처되는 말이죠) 다행히 조직검사상 이 괴사된 부위가 추가적인 문제를 일으키진 않는다니까 그걸로 위안삼고 있어요. 하긴 제가 엉덩이 걱정하는건 사치죠. 제가 그따위로 살았으니까요.

무슨 글이 그냥 횡설수설이 돼버렸네요. 글은 현재 감정상태를 보여주기도 한다는데 지금 제 상황이 이 어수선한 글과 궤를 같이 하는것 같기도 해요. 그러고 보니 요즘은 독서도 안하고 취미생활도 없이 막연한 미래불안에만 사로잡혀 있어요. 가입하고 나서 그나마 처음으로 회원님들과 소통을 해본거라 기뻤는지 저도 모르게 TMI만 잔뜩 늘어놓고 있네요. 쓸데없는 제 고민 들어주신것만도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