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조종(祖宗)의 홍업(鴻業)을 이어받아 만방(萬方)을 통어(統御)하니, 성교(聲敎)가 미치는 곳에 마땅히 은택(恩澤)을 널리 펴야 할 것이다. 하물며 그대의 나라는 대대로 충성이 돈독하니, 하사의 은전을 더욱 후하게 해야 마땅하리. 그리하여 특별히 정사(正使) 우춘방 우서자 겸 한림원 시강(右春坊右庶子兼翰林院侍講) 동월(董越)과 부사(副使) 공과 우급사중(工科右給事中) 왕창(王敞)을 보내어 조칙(詔勅)을 가지고 가서 왕에게 유시(諭示)하고, 아울러 왕과 비에게 폐백(幣帛)과 문금(紋錦)을 내리게 하니 이르거든 수령하고, 더욱 짐의 사랑하는 마음을 체인하여, 예(禮)를 잡고 의(義)를 행하여, 번보(藩輔)를 더욱 융성하게 하여, 함께 태평한 복을 누리도록 할지어다.”

위는 효종황제(孝宗皇帝)의 칙서(勑書)입니다. 홍치(弘治) 원년에 우춘방 우서자 겸 한림시강(右春坊右庶子兼翰林侍講) 동월(董越)과 우급사중(右給事中) 왕창(王敞)이 와서 반포하였습니다. 동월이 도성에 이르러 강정왕(康靖王 성종)을 알현하고 감탄하여 말하기를

“제가 옛날에 듣기로는 현왕(賢王)께서 학문이 고명하고 예의에 달통하시다던데 지금 사명을 받들고 운 좋게도 친히 뵙고 보니 과연 그러하십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칙서를 받고 나서 근정전(勤政殿)에서 사신에게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인삼탕 한 잔을 올리고 나서 왕이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가 통역자인 장유성(張有誠)을 돌아보고 말을 전하기를

“소국의 신하가 명나라 조정을 존숭하여 섬기는 것은 예의상 마땅한 일이온데, 칙서를 내려 이처럼 나를 격려하시니, 큰 은혜를 갚기 어렵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동월과 왕창이 대답하기를

“명나라 조정은 성국(盛國 조선)이 본래부터 충성과 공경을 보였기 때문에 그 은전이 다른 나라와 같지 않습니다.”

라고 하니, 왕이 손을 들어 이마에 대고 말하기를,

“보답하기 어렵습니다. 보답하기 어렵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말을 마친 뒤에 왕은 동월과 왕창이 홍례문(弘禮門)으로 나가는 것을 전송하고, 가마 탄 것을 보고 나서 물러났습니다.

태평관에 도착하자 왕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술잔을 들어 술을 주고받다가 마지막 잔을 마시려고 할 즈음 왕이 장유성을 돌아보며 말을 전하기를

“《시경》에 ‘습지에 뽕나무가 아름다우니 그 잎이 무성하도다. 군자를 만나고 나니 그 즐거움이 어떠한가?’라고 하였는데, 내 두 분 대인(大人)을 뵙게 되니 마음속 기쁨이 아직도 다하지 않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동월과 왕창이 거듭 왕과 서로 예로 사양하자, 왕이 말하기를,

“《춘추》의 예에 천자의 사자는 비록 미천하다고 해도 제후의 윗자리에 앉는다고 하였습니다. 더구나 두 분의 대인은 얼마나 성대한 지위에 계십니까? 모두 천자의 근신이십니다. 지금 멀리서 소방에 오셨는데 어찌 감히 사양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습니다. 동월과 동창이 모두 왕의 어짊을 칭송하였습니다. 왕이 장유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근신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를 것이다. 바로 황제의 안전에서 행주(行走)하는 사람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연회가 끝나자 드디어 물러갔습니다.

신이 삼가 살펴보니 효종황제는 성학(聖學)에 밝았습니다. 일찍이 학사 장원정(張元禎)과 더불어 성리(性理)를 강하다가 〈태극도(太極圖)〉를 찾아서 보고 말하기를, 

“하늘이 이 사람을 내시어 짐을 깨우치게 해 주셨도다.”

라고 하고 〈정중음(靜中吟)〉을 지어 말하기를

“고요함을 익히고 원기를 조화시켜 이 몸을 기를지니, 이 몸이 무탈하면 이것이 곧 천진(天眞)이라. 주나라는 800년간 영광과 복록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었으니 사직의 안위는 훌륭한 사람을 얻은 데 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태학사신 이동양(李東陽)이 찬(贊)에서 말하기를

“조화의 움직임은 고요함을 본체로 삼으니 만물이 거기에서 길러지고 천지가 거기에 참여한다. 쓰는 권한은 내 몫이고, 잘 쓰이는 것은 인재에게 달려 있다. 원기를 조절하고 하늘을 대신하여 일을 행함에는 임금이 있고 신하도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아, 이동양이 성덕을 찬양한 것이 지극하다고 이를 만합니다.

바야흐로 이때 강정왕이 유학을 숭상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홍문관(弘文館)을 궁전 옆에 세우고 경술(經術)과 문장(文章)에 능한 선비 17명을 선발하여 하루씩 번갈아 숙직하면서 도의를 가지고 풍간하게 하였습니다. 선성(先聖)을 제사하고 대사례(大射禮)를 행하였으며 학전(學田) 400여 경(頃)을 하사하였습니다. 존경각(尊經閣)을 건립하여 왕실에서 보관하고 있던 오경(五經)과 사서(四書)를 반사(頒賜)하였고, 또 쌀 300여 석을 하사하여 그 쓰임에 충당하도록 하였습니다. 명륜당(明倫堂)에 앉아서 양로례를 행하면서 좋은 말을 구하고 스승과 학생들에게 큰 잔치를 베풀었으며, 악장(樂章)을 지어서 올리도록 명하고, 우림(羽林)의 병사들까지도 모두 수학(受學)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왕조의 밝은 정치가 삼대(三代)에 비할 만하였습니다.

대개 장헌왕(莊憲王 세종)이 선종황제(宣宗皇帝)와 같은 시기에 재위하였고 강정왕이 효종황제와 같은 시기에 재위하였으니 이는 천지의 지극한 성덕이 같은 시기에 만난 것입니다. 동월의 기록에 강정왕이 베풀어준 연향의 예가 자못 상세합니다. 자세하게 적은 목적은 지극한 성덕의 만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강한집(江漢集) 제25권 발미(跋尾) 조제고(詔制考) 즉위칙 홍치〔卽位勅 弘治〕

임금이 악차(幄次)에 나아가니, 두 사신이 예조 판서(禮曹判書) 유지(柳輊)를 불러 사물(賜物) 주는 것을 마치고 나와 자리[次]에 나아갔다. 임금이 두 사신에게 전(殿)에 오르기를 청하니, 두 사신이 재배(再拜)하거늘 임금이 답배(答拜)하고,

"과인(寡人)이 삼가 칙서(勅書)를 읽으니, 이르기를, ‘성교(聖敎)가 미치는 곳은 의당 은택이 미쳐야 한다.’고 하였으니, 내 그윽이 생각하건대, 사해(四海)의 밖은 무려 만국(萬國)이 되는데, 우리 나라는 대대로 충성을 돈독히 한다 하여 내려 주신 은전이 편벽되게 융성하고, 또 두 대인(大人)을 선발하여 조칙(詔勅)을 받들고 오게 하시어 황은(皇恩)이 답지(沓至)하였으니, 감격함이 망극(罔極)합니다."

하였는데, 두 사신이 말하기를,

"오늘 현왕(賢王)께서 두 번씩이나 번거롭게 거둥하시니 황공 황공(惶恐惶恐)합니다. 우리 두 사람이 강을 건너온 이래로 곳곳에서 잔치를 베풀어 위로해 주심을 거듭 받으니, 현왕(賢王)의 두터운 예우에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예의상 당연한 것인데, 어찌 감사함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성종실록 214권, 성종 19년(1488년) 3월 13일 정축 11번째기사

이는 보시다시피, 중국의 명나라 사신단 정사이자 당시 명나라 제 9대 임금인 효종(홍치제. 본명은 주우탱 입니다.)이 태자(황태자)이던 시절에 전담 스승이였고 한림원의 시강 곧 당상관(당상원)으로 승진한 동월이 조선의 제 9대 임금인 성종과 대화할 때, 조선을 두고 성국 곧 해동성국(애초에 우리나라가 중국의 동쪽 방면에 위치해온 국가이니까요.)으로 칭송한 기록입니다. 조선국의 또다른 국호(국명)로 성국(해동성국)을 쓴 것이기도 하니, 흥미로울 따름이지요. 중국의 당나라 조정에선 동시기의 한국의 남북국(남북조) 시대를 구성한 신라, 발해를 두고서 신라는 군자국, 발해는 해동성국으로 칭송했는데, 이게 조선 시대까지도 그대로 이어져왔음을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유익한 참조가 됐으면 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