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최근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 전한길 씨의 여러 발언 중 특히, ‘계몽령’이라는 발언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을 몇 자 적어봅니다.

잠깐 역사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구한말이라는 시기 즉, 1890년대부터 1910년 일제강점기 전까지 국권 회복 운동은 크게 두 흐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한쪽은 을미 을사 정미의병과 같은 의병 투쟁, 한쪽은 독립협회, 신민회 등으로 대변되는 애국계몽 운동입니다.(참고로 교과서 기준입니다.) 여기서 ‘계몽’이라는 표현이 쓰였는데요, 계몽의 사전적 의미는 ‘지식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침.’ 이라고 합니다. 즉, 당시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서는 교육, 언론, 경제 등의 분야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하는 지식인들이 지식수준이 그보다 낮은 민중들을 가르쳐서 일제로부터 국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사조가 애국계몽 운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로 접어들고 3.1운동 이후가 되면 우리 민족 운동의 흐름은 의병투쟁은 무장독립투쟁으로, 애국계몽운동은 실력양성운동으로 용어가 변하고 본격화 됩니다. 보시면 ‘애국계몽’이 ‘실력양성’으로 변하였습니다. 왜 ‘계몽’이라는 용어가 빠진걸까요? 그 이유가 제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1919년,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다양한 계층이 참여한 3.1운동 이후, 우리는 이 나라의 주인이 더 이상 국왕이 아닌, 국민이라는 것을 자각하였습니다. 즉, 국민 주권 의식에 대한 역사적 경험을 한 것이죠. 그리하여 우리 역사 최초의 민주 공화정,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하기도 했구요.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이제부터 우리 역사의 주인공은 왕족, 양반과 같은 소수의 특권층, 기득권이 아닙니다. 바로 이름 없는 ‘우리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더이상 지식을 독점한 소수의 지식인, 특권층이 선택적으로 떠먹여주는 지식을 받아먹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1919년 이후 민중은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계몽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계몽은 민주공화국 체제에서는 민중을 대상으로 쓸 수 없는 말입니다. 

자 그런데, 한국사 강사를 하고 계신다는 분이, 국민을 향해 대통령이 ‘계몽’을 하려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에 대해 우리 국민은 진심으로 분노해야 합니다. 대통령과 그 주변의 특권층은 여전히 고리타분한, 봉건주의적, 전근대 신분의식을 기반으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국민을 여전히 ‘지식 수준이 낮으며’, ‘인습에 젖어있는’ 존재로 깔보고 멸시하고 있습니다. 3.1운동부터 어렵게 어렵게 지켜낸 우리의 주권과 민주주의를 엘리트주의를 가장해 다시 박탈해가려고 하는 일종의 반동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어찌해야하겠습니까? 동학농민운동, 3.1운동, 4.19혁명, 5.18광주 민주화 운동, 87년 6월 항쟁, 촛불혁명, 빛의 혁명까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면면히 이어온 우리의 전통을 보여줄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사를 가르치셨다는 전한길 씨의 발언에 전에 없던 참담함, 비참함, 슬픔, 괴로움, 분노 등등등을 느끼며 저 역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두서없이 소회를 늘어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