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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부동산 관련 블로거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피생이님의 글입니다. 투자냐 투기냐를 떠나 의식주로써 필수 요건인 집을 사야하는 인생의 필수적인 선택에 대해 한번쯤 깊게 성찰해 보게 하는 글이네요

<결혼하는 사람들을 위한 부동산>

젊을땐 다들 돈이 없다.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아 시작하는 이들도 물론 있지만, 일단은 예외적 경우라 보아야 한다.

건강한 몸과 영리한 머리 그리고 성실한 습관을 물려받았으면, 이 경주를 달려갈 충분한 조건을 다 갖춘 것이다.

젊어 돈이 없는게 이상한 것이라거나 잘못된건 아닌데, 세상엔 또 돈이 많은 사람이 천지다.

어쩔수가 없다. 오천만이 모여사는 나라에 이렇게 건물이 많고 집이 많은데 그게 다 주인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 자본은 일이년에 축적된 것이 아니고, 지난 수십년간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자라온 것이기 때문에,

젊은이가 맨주먹으로 움켜쥐기 어려운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여기에서부터 갈림길이 시작된다.

당장은 돈이 없지만, 조금씩 쌓아올려서 언젠가는 내 것을 갖고 조금씩 늘려갈 것인지,

아니면 빌려 쓰는것에 익숙해지고 소유는 내 길이 아니라고 선언할 것인지 말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평생 은행 좋은 일만 시키다가 갈 일 있느냐고, 전세도 큰돈 묶이니 싫고 그냥 매달 월세 내도 돈 떼일 일 없고 집주인한테도 고객님으로 슈퍼을 할 수 있다고.

어차피 그때도 집값은 눈에 보이는 곳은 다 5억, 7억 그랬고, 내가 가질 길은 없어 보였다.

수중에 있는건 오천만원이 전부. 그나마 자동차 할부금 천만원이 카드빚으로 있었다.

가진 돈으로 서울시내는 어림도 없었고 경기도에서도 신축은 못 들어가겠더라. 원흥 도래울마을에 새 아파트가 있어 전세 알아보러 갔더니 2억도 넘었다.

가난하다고 해서 모르겠는가, 새집 좋다는 것을.

다만 그걸 누릴 경제적 자격이 충분치 않았을 뿐이다.

그나마 내가 가졌던 우연한 행운이 있었다면 전세자금대출이 그렇게 쉽게 많이 된다는걸 몰랐던 거였다.

나는 정말로 몰랐다. 1억도, 2억도 전세대출로 빌릴 수 있다는것을.

그리고 또 하나의 행운은, 회사에서 1% 저리로 주택구입자금을 8000만원까지 빌려주었다는 것이다.

은행에서도 LTV 70%까지 넉넉하게 한도설정을 해 줬으니, 당장 가진 돈은 적어도 2억짜리 집 정도는 내돈 한푼 없이도 살 수 있었다.

금리는 3% 내외. 담이 작아서 2억까지는 대출을 못 내고, 1억 2천정도 빚을 내서 1억 7천짜리 집을 샀다. 20년 넘은 19평짜리 1기신도시 아파트.

그런 집은 오르지도 않고, 갖고 있어봐야 애물단지고, 청약점수만 못 쌓게 하는 것이며, 녹물 나와서 지긋지긋하고, 앞으로 집값은 떨어질 일만 남았다는 사람, 그때도 천지였다.

근데 나는 비교적 단순하고 순진해서 에라이 이거 1억 4천주고 전세 살 밖에야 그냥 이삼천 더주고 사버리지 생각을 했다.

그래야 도배라도 마음대로 하고, 벽에 못이나 박을 것 같아서.

천만원 들여서 수리도 다 했다. 화장실 깨고, 도배하고, 싱크대 갈고 말이다.

끝끝내 못은 마음대로 못 박았다. 도배지에 상처날까봐 싫어서가 아니고 이게 콘크리트가 20년 넘어가니 망치로는 아예 들어가지도 않고 해머드릴이 와야 간신히 박더라....

이것 때문에 이케아에서 거울 사와서 그거 박다가 아내랑 진탕 싸우기도 했다. 그냥 내가 스탠드형 사자니까....

여간, 거기서 2년 살면서, 아내와 내가 버는 모든 돈은 한 통장에 무조건 합쳤다.

각자 통장 잔고는 카드값 나가고 100만원만 버퍼로 남겨놓고, 나머지 돈은 무조건 은행에 넣었다.

그땐 마통도 쓰지 않았다. 차 할부금이 천만원쯤 남아 있었는데 그거부터 최우선적으로 갚고, 그 다음부터는 담보대출을 갚아나갔다.

조기상환수수료가 있었지만 어차피 안 갚고 있으면 몸통 이자가 더 큰것이니, 신경쓰지 않고 밀어넣었다.

1억 2천 빚은 30년짜리였는데 1년 반쯤 지나니 8000만원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한 사람 월급은 전부 은행에 털어넣어버리고 한 사람 월급도 꽤 부었던 것 같다.

그 사이 그런데 집값이 올랐다...?

1억 7천 주고 산 집이었는데, 부동산에 물어보니 2억 천, 2억 2천이 걸려 있었다.

만약에 2억 2천에 팔고 담보대출 8천을 빼면 수중에 1억 4천 현금이 있게 되는 셈이었다.

결혼할때 딱 오천 아니 차 대출 빼면 사천 있었는데, 거의 1억이 새로 생긴 셈이었다.

이게 10억 가진 사람이 1억이 더 있는 것은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이제 막 돈을 모으는 입장에서는 엄청난 것이었다.

양도세 때문에 2년 실거주는 채워야 하니 반년이 더 있었는데 그 반년동안 우리는 2000 넘게 또 갚아넣었다. 그리고 결국 2억 1700에 그 집을 팔고 나왔다.

(시기가 기묘하게 좋기는 했다. 그 집, 우리가 판 이후로 2억 이하로 호가가 떨어졌다가 이제야 다시 2억 천, 이천 부른다고.)

그 돈 들고 서울 끝자락의, 장모님 댁 바로 옆, 뉴타운 아파트로 넘어왔다.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가진 돈이 뻔하니 20평대 보러 갔는데 3억 8천 부른다. 2억 2천 대출 내야 하는데 좀 부담스러우면서도 지금 페이스로 살면 갚을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근데 문득 '아 몇달 지나면 좀 떨어지겠지'해서 설 지나고 갔더니 4억 달라고 해서 기분이 상해버렸다.

뭐, 집도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연도형 3층이었는데 1층이 고기집이었다. 20년 넘은 19평보다는 훨씬 넓고 신식이었지만 마음에 차지 않았다.

부동산에서 믹스커피한잔 먹으며 마음 달래는데 4억 2천짜리 32평이 나왔다는 거다. 그래서 또 혹했다.

2천 차이에 32평이면, 엄청난 가성빈데?

가봤다. 끝동 2층 필로티였는데 한낮인데 집이 어두컴컴했다.

집 바로 앞은 놀이터, 늘상 시끄러울게 뻔했다.

그래도 가격이 괜찮다 싶었고 조금 무리하면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맞벌이 신혼에 한사람 월급 털어넣으면 반년 차이일 뿐이다.

부모님은 별로라 했다. 집이 영 마음에 안 든다고. 그래도 하려면 해도 되겠다고 그러셨다.

뭐, 사실 지가 돈 모아서 한다니...

근데 주인이 또 어깃장을 놨다. 4억 3천 안주면 안 판다고.

에이, 기분이 팍 또 상해버렸다.

500만 네고하자고 했는데 영 수가 틀렸다. 또 믹스커피한잔 먹으며 삭히고 있는데 사장님이 슬쩍 물어본다.

로얄동 나온거 있는데... 집이나 한번 보시라고.

얼마냐 했더니 주저하다가 좀 가격은 있는데 일단 가보잔다.

집을 봤다.

거실이 저 멀리까지 뚫려 있고, 해도 잘 들었다.

무엇보다 느낌이 반듯하고 따스했다.

그 자리에서 그냥 계약을 했다. 마치 홀린 사람처럼 말이다.

4억 6천 주고. 원래 생각한 3억 8천보다는 거의 억을 더 준 셈인데, 2년 벌어서 다 갚자 생각했다.

어차피 유부남에 애있는 월급쟁이의 노동은, 1) 내집을 갖고 2) 자식 키우고 3) 맛있는거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렇게 첫 집에서 둘째 집으로 갈아타고, 넓혀서 왔다.

그때 32평으로 점프를 뛰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직 힘들었을 것이다. 6개월 지나니 시세가 5억이 넘어가 버렸거든.

이때부터는 대출을 최대한 천천히 갚기 시작했다. 대신 별도 계좌에 모았다.

대출이자가 이미 2.5%로 어차피 워낙 낮았던 데다가, 시드머니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내 주변에 있는 집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사용가치에 비해 가격이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전세가 3억이면 집값은 4억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히 4억일 리는 없을 것 같았고,

만약에, 저 집을 사서 지금은 세를 주지면 20년 월급쟁이 하는 동안 3억 전세금을 다 갚아서 빼주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나도 노후에는 진짜 집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주택의 사용가치는 장기적으로 물가를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지난 6, 7년 살아왔다.

자산은 커졌고, 빚도 많아졌으며, 무게는 무거워졌다.

그때 4억 6천주고 산 집은 7억이 넘어갔다. 어떻게든 그때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아마 영영 내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집들도, 뭐 대강 많이 올랐다. 그러나 전세금은 천만원씩만 올렸다.

그래야만 내가 정말로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돈은 없으면서 은행에 기대 '투기'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가진 것 없는 월급쟁이는, 그렇게 해서라도 자기 집을 갖지 않으면, 이 경주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1년에 이삼억씩 벌어서 집값 같은건 그냥 무시해도 되는 처지가 아니고서는 말이다.

가능하면 어떻게든 자기 집을 갖고, 조금씩 더 나은 곳으로 갈아타며 자본을 쌓아가는 길뿐이다.

다주택이라 하면 대단한 것 같은데, 마찬가지다. 잉여 자본을 묻어놓고 긴 세월을 버텨 온전히 자기 것으로 바꿔가는 수단일 뿐이다.

무슨 조정지역에서 빠졌다고 거기 가서 샀다 팔았다 하며 몇천 벌었니, 피가 얼마네 하는 그런 재주는 나한테 없고,

지금은 아니지만 10년 뒤에는 분명히 지금보다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나는 거기에 두고 있을 뿐이다.

그 속도와 규모가 예상보다 빠르고 컸던 것은 순전히 행운의 영역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했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 결혼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 솔직히 막막하고 갑갑하다.

1~2억 모은 사람들은 그래도 꽤 있는데, 그 돈으로 비빌 곳이 없기 때문이다.

<돈이 없을수록 서울의 아파트를 사라>에서 집중적으로 소개했던 4~5억짜리 아파트들이, 지금은 다 7~9억 됐다.

접근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대출도 40%밖에 안 나온다.

길이 없는걸까?

그렇지 않다. 나도 서울에서 시작할 수 없었다.

최근 1~2년간은 3~4억대의, 주소지는 경기도이지만 웬만한 서울 뺨치는 교통여건의 신축 집들이, 분명히 있었다. 여러 친구, 선배들에게 추천을 했고 실제로 여러 가족들이 입주를 했다.

그때 그 집들도 전세가 3억씩은 했다.

지금은? 최근 찍힌 실거래가가 5억을 넘어섰다. 전세가 이제 4억이다.

이게 바람직하다 긍정적이다 같은 논의는 별로 하고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때 그 집에라도 발을 디디지 않았으면, 지금은 더 힘든 상황이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출 2억 끼고 3억 5천주고 산 집이 5억 되었고, 그사이 대출금 5천 갚았으면, 가산이 2억 늘어난 것이다.

본질은 심플하다.

시드머니를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든 1억은 만들고 2억까지 만들면 더 좋다. 부모님 집에서 동거하며 직장생활 20대 후반에 시작하고 버는 돈 몽땅 모으면 1억은 불가능한 이야기 아니다.

그리고 현실적 목표를 설정하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10억짜리, 20억짜리 강남 집값 아무리 쳐다봐야 아무런 도움 되지 않는다.

회사까지 1시간 이내, 가능한한 지하철 가까운 곳, 이왕이면 신축, 다른 집들이랑 모여 있는 곳.

그리고 거기에 입주를 성공했으면, 열심히 벌어서 빚을 줄인다. 이제 1G의 중력에는 안착했으니, 다음으로 나아갈 최소한의 토대는 갖춘 셈이다.

그리고 다음 스텝은 또 현실적 범위 내에서 모색한다. 그 과정을 반복하고 반복하며 인내를 쌓는 것이다.

이미 집을 가진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집값만 오르는 것 같지만, 다들 똑같이 이미 지나온 길이다.

빌려 쓰는 것에 환호하지 말자.

그거 결국 돌려줘야 할 물건이고, 내 것이 아니다. 사용료는 물가가 오르면 계속해서 오른다.

영영 무소유의 길을 갈 것이 아니라면, 남에게 기대지 말고 스스로 갖추는 방향을 우선하자.

국가가 내게 무언가를 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자. 이 글을 여기까지 읽고 있을 사람이라면, 어차피 지원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서울시내 집값은 이제 기본 단위가 10억이고, 경기도도 5억이 보통이 되었다.

어쩔 도리 없다. 그러나 첫발을 떼어야 한다.

나보다 더 가진 사람이 세상에 그만큼이나 많은 것이고, 그러나 10년 뒤, 20년 뒤에는 나도 그만큼은 따라가야만 한다.

그리고 그렇게 빠듯하게 따라가다 보면, 가끔 행운이 돕기도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더라면 겪지 않았을 일들 말이다.

p.s. 내 주변에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건 그거대로 참 애석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