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얼굴이 예뻐서 한때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10년 전 사귀던 구(舊)남친 오모씨는 얼굴도 잘생겼고 직업도 좋고 언변도 좋고 흠잡을 데 없는 신랑감이었다. 그러나 옛말에 산 좋고 물 좋고 와이파이 잘 터지는 정자는 없다더니 이 오씨의 문제는 바로 입방정이었다. 싸우고 나면 홧김에 툭하고 헤어지자는 소리를 내뱉는데, 이 말이 빌미가 되어 결국은 진짜로 헤어지고 말았다.
그 중 가장 적극적인 것은 다름 아닌 10년 전에 헤어진 구남친 오씨다. 10년간 자기는 다른 여자 일절 안 만나고 내가 솔로 되기만 오매불망 기다렸단다.(사실 이건 뻥인 게 다른 여자한테 몇 번 들이댔다가 다 차인 걸로 알고 있다. 나도 다 듣는 귀가 있다.)
웃긴 건 그때 나에게 박씨를 소개시켜 줬던 웬수바가지 안씨가, 이번에는 오씨야말로 진짜 진국이라며 오씨를 나에게 적극 추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참 성실하고 선하고 괜찮아 보이는데 안씨 이 사람은 도대체 줏대라는 게 없다. 그러니까 본인도 여자친구가 여태 없는 것 같은데 이제는 이 사람 저 사람 좋다고 추천하지 말고 스스로 매력을 키워보면 좋을 것 같다. 하여튼 나도 이제 나이도 찼고 10년간 박씨한테 데이기도 옴팡 데이다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옛말에 구관이 명관이라는데 오씨만 한 사람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나더러 사귀자고 목매고 쫓아다니는 또 다른 박모씨(박씨 2호라고 부르자)가 있는데 이 사람은 더 가관이다. 아니 사람이 어떤 음식을 좋아해도 정도가 있지 삼시세끼 같은 메뉴를 먹자는 게 사람인가? 이 박씨 2호는 데이트만 했다 하면 생태탕을 먹자는데 도저히 견뎌 낼 수가 없다. 이 자와 결혼했다가는 365일 삼시세끼 생태탕만 먹어야 할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온다. 가뜩이나 우리나라는 이미 명태 씨가 말랐다는데 러시아까지 말랐다고 기사 뜨면 필시 그 박씨 2호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이런저런 사항을 고려 끝에 정성을 보아 구남친 오씨를 다시 받아주기로 했다. 단 조건은 1년간만. 말하자면 기간제 인턴 같은 것이다.
앞으로 딱 1년간 다시 만나보고, 역시 이 사람은 아니다 싶으면 결혼은커녕 남친으로도 더 안 만날 예정이다. 말해 두는데 오씨를 다시 사귀기로 한 건 딱히 그가 좋아서가 아니라 더 좋은 사람이 없어서이다.
제발 입 좀 조심하고.
싸우면 헤어지자 소리 하는 거 그거 상습이다.
하여튼 두 번 다시 어이없는 이별은 겪고 싶지 않으므로 오씨의 분발을 바랄 뿐이다.
한 줄 요약: 앞으로 1년 동안 나한테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겠다.
['삼호어묵' 윤세경·'정부가 집값을 안 잡는 이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