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백종민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외국 정상의 방문이 극히 제한 된 상황에서도 문재인 대통령,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에 이어 자신의 취임 후 세 번째로 백악관을 방문한 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을 외면하고 줄행랑을 친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6월말 가니 대통령을 백악관에 불러 아프간 주둔 미군 철군 후에도 외교·경제·인도적 조력으로 아프간 국민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가니 대통령에 2억6000만달러 규모의 인도주의적 지원과 코로나19 백신 300만 회분도 제공 약속도 했다.

완벽한 정치적 오판이었다.
가니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만남 후 50일 만에 국가를 포기했다.
그리고 아프간 정부는 미군의 공격 대상이던 탈레반에 사실상 항복했다.

아무리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전쟁을 마무리하기로 했다고 하지만 이런 식의 결말은 바이든 대통령도, 미국이 원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정책적 실수에 대한 야당의 치열한 공세를 예상해 볼 수 있다.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은 아프간 주둔 미군 철군이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계획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실행에 나선 것은 바이든 행정부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행정부의 정책을 줄줄이 뒤집는 상황에서도 아프간에 대한 정책만은 되돌리지 않았다.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친 바이든 성향 미국 언론들의 불만도 쏟아지고 있다.
CNN 방송은 미군 철수 결정 후 예상과 달리 빠르게 벌어진 아프간 정부 붕괴가 바이든에 정치적 재앙이라고 진단하면서 질서 있는 출구를 마련하지 못하면 백악관도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아프간에 대해 보여준 행동이 미국의 양심과 명성을 훼손했다는 지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돌아왔다고 했지만, 이번 아프간 상황은 미국 정부의 위기 앞에 해외 상황은 여전히 뒷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불안한 의회 상황을 기반으로 출발했다.
민주당이 상원에서 절반인 50석을 차지했지만, 당 내 이견을 무마하지 못했다.
중도파는 보수 쪽으로, 진보파는 더욱 진보적으로 나아가며 백악관을 흔들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 출범 후 주요 정책 의제 법제화가 정체된 것과도 연계해 볼 수 있다.
취임 7개월을 넘어서야 1조달러 규모 인프라 투자 법안이 상원 문턱을 넘었지만 애초 계획에는 크게 못 미친다.
대부분의 주요 공약 사항은 의회 문턱도 넘지 못했다.

불안한 정치적 입지는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눈을 내년 중간선거로 향하게 했다.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이 우위를 차지하면 바이든 행정부의 후반기는 사실상 와해 순서에 들어설 수 있다.
공화당은 이미 선거법을 수정을 시도하면서 바이든 정부를 옥죄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9·11테러 20주년을 맞아 아프간에서 철군해 여론의 지지를 확보하고 중간 선거 승리 발판을 만들겠다는 무리한 계획이 오히려 일을 망쳤다.

아울러 중국은 믿을 수 없는 국가라고 강조하던 미국은 국제사회의 믿음을 저버렸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모두 미국이 자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