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성일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인터뷰를 진행했다. /넷플릭스 제공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작품도 캐릭터도 모두 화제인데 정작 이를 연기한 배우는 고요하다. 많은 것들이 감사하지만, 들뜨지 않고 지금까지 해온 대로 보여주는 것이 그 감사함에 보답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배우 정성일의 이야기다.

정성일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극본 김은숙, 연출 안길호)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작품은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문동은(송혜교 분)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학폭 가해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정성일은 극 중 문동은에게 학교 폭력이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가해자 박연진(임지연 분)의 남편 하도영 역을 맡았다. 계획적으로 접근한 문동은에게 끌려 판도라의 상자를 연 그는 미처 알지 못했던 아내의 과거를 알게 되고 선택의 기로에 서는 인물이다.

일찌감치 '더 글로리' 촬영을 끝낸 정성일은 곧바로 공연 무대로 돌아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근황을 묻자 그는 "연극이랑 뮤지컬 공연을 계속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며 "요즘은 현장에서 달라진 인기를 체감 중이다. 항상 다니던 길이지만 날 알아봐 주는 분들이 더 많아졌다. 또 내가 하는 공연에 일반 관객들이 많이 온다"고 밝혔다.

작품의 인기는 확신했으나 자신에 대한 화제성은 예상하지 못했던 정성일로서는 얼떨떨한 상황이었다. 그는 "'더 글로리'는 메시지도 흥행 가능성도 명확한 작품이었다. 다만 나를 향한 포커스나 내가 이슈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며 "내가 이렇게까지 인기를 얻는다고? 왜? 싶었다"고 털어놨다.

"'어른 섹시' '퇴폐미' 등의 수식어를 붙여주시더라고요. 제 어디가 퇴폐하다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절 좋게만 봐주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죠. 주위에서도 절 자랑삼아 안다고 하는 것도 사인 부탁을 받는 것도 모두 감사합니다."

배우 정성일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넷플릭스 제공

정성일의 출연은 김은숙 작가의 Pick(픽)에서 비롯됐다. '비밀의 숲2'를 보던 김은숙 작가는 윤세아 옆에 있는 정성일을 발견했고, 그때부터 '하도영은 쟤야'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집필했다.

때문에 정성일은 캐스팅 관련 소식을 비교적 빠르게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촬영 들어가기 1년 전에 이야기를 처음 들었었다. 김은숙 작가님이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인데 출연할 것 같다고 하길래 당시에는 안 믿었다. 뭘 알아야 준비도 할 수 있는데 아무 정보도 없었다. 그렇게 소식이 없는 채 시간이 지나고 책을 받고 첫 리딩에 갔다. 그때도 불확실했다. 언제든 잘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늘 불안했다"고 털어놨다.

정성일을 모델로 하도영이 탄생했다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준비할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외적으로 연기적으로도 조금 더 완벽한 하도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연구했다는 정성일이다.

먼저 김은숙 작가와 안길호 감독은 정성일에게 체중 감량을 요구했다. 탄수화물을 잘 먹지 않는 등 자기관리가 철저한 하도영의 이미지를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에 하도영은 실제로 4kg을 뺀 뒤 촬영에 돌입했다.

"막상 살을 빼고 갔더니 촬영장에서는 '왜 이렇게 많이 뺐냐'고 하더라고요. 다들 이 정도로 빼라고 하진 않았다면서. 감독님이 '왜 배우들은 살을 조금 빼라고 하면 극단적으로 빼고 오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죠.(웃음)"

연기적으로는 '한국의 양조일'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이 문동은과 처음 만나는 기원 신이다. 정성일은 "사실 훌륭한 배우를 따라한다고만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왜 이 사람처럼 했으면 좋겠다는 건지 감독님 말에 들어있는 뜻을 더 생각했다. 분위기랑 뉘앙스, 눈빛만으로도 전달되는 바가 명확했으면 한다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배우 정성일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호흡을 맞춘 송혜교에 관해 언급했다. /넷플릭스 제공

극 중 하도영은 모든 것을 알고도 예솔이의 아빠로 남는 것을 선택한다. 오랜 기간 하도영으로 살았던 배우로서 결말에 만족했을까. 7세 아들이 있다는 정성일은 "아빠로서 충분히 공감됐다"고 밝혔다.

그는 "아기 때부터 일하는 시간 외에는 육아에 전념했다. 그러다 보니 아기 한 명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안다. 그리고 힘든 만큼 아이가 커가는 모습이 큰 뿌듯함을 준다는 것도 안다"며 "하도영은 자기의 모든 걸 다 덜어내고 유일하게 환하게 웃는 순간이 예솔이를 만날 때다. 그런 사람이라면 충분히 기른 정을 선택할 것 같다"고 해석했다.

다만 공감과는 별개로 의문이 드는 점도 있었다. 정성일은 "축구장 장면까진 좋았는데, 공항 장면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어찌 됐든 살인자이지 않나. 살인을 한 하도영이 예솔이의 손을 잡고 가면서 웃는 장면이 연기를 하긴 했지만, 의구심이 생겼다. 과연 저렇게 떠나서 제정신으로 예솔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행복할지 궁금하면서 한편으로는 예솔이가 걱정도 되는 장면이었다"고 전했다.

송혜교와의 '케미'도 화제였다. 이에 두 사람의 호흡에도 많은 궁금증이 집중됐다. 정성일은 송혜교와 함께하며 배우로서 다시 한번 대단하다는 걸 느꼈단다.

"송혜교는 배우로서 정말 멋진 배우예요. 시청자 입장에서 보다 보니 저랑 마주하는 장면이 아닌 것도 보잖아요. 특히 극 중 엄마랑 싸우고 불 나는 장면은 소름까지 돋았어요. 때때로는 제가 보지 못했던 얼굴들도 나오더라고요. 그때 이 친구가 정말 멋진 배우라는 걸 새삼 깨달았죠. 사실 사적으로는 탑배우인데 털털하고 동네오빠 동생으로 지내다 보니 얘도 사람이구나 싶을 때가 많은데 말이에요.(웃음)"

배우 정성일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인터뷰를 진행했다. /넷플릭스 제공

'더 글로리'는 신드롬으로 언급될 만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정성일은 작품에 출연한 배우라고 보기 힘들 만큼 평정심을 유지했다. 실제로도 일장일단에 크게 휩쓸리지 않으려고 하는 정성일이었다.

그는 "나도 열심히 했고 또 하지만 나만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기회가 오지 않아 빛을 보지 못하는 배우들이 주변에 많다. 나는 그중에서 운이 좋아 한 작품을 하게 되고 또 그 작품을 누군가가 좋게 봐줬다는 이유로 또 다른 작품을 하게 된 것뿐이다. 물론 이 자리까지 오게 된 점에 대해서는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저란 사람이 변화가 많지는 않은 편이에요. 늘 불안함이 있다 보니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마음가짐도 있어요. 제 나이에 초심이라고 말하기엔 웃기지만 이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싶어요. 지금의 관심과 이슈에 젖지 않는 건, 이 또한 금방 사라질 걸 알기 때문이에요. 그저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내가 해야 할 것들을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고자 합니다."

끝으로 정성일은 시청자들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 밝혔다. 그는 "'이 배우 진짜 잘한다', 이런 칭찬이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배우에게 가장 큰 칭찬은 연기 잘한다는 말인 것 같다"고 바랐다.

sstar1204@tf.co.kr
[연예부 | ssen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