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최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해외 손자회사를 통한 순환출자 고리를 만든 것에 대해 “대한민국의 국격을 추락시켰다”고 비판했다.

포럼은 31일 논평을 내고 “자본시장은 신뢰를 바탕으로 발전하고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이 필수 조건”이라며 “이를 무시하고 파행적으로 진행된 고려아연 임시주총은 그동안 정부, 국회 및 전 국민이 간절히 바랐던 ‘한국 증시의 선진시장 진입’ 희망을 무참히 짓밟았다”고 지적했다.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에서 주주로부터 항의를 받고 있다. 뉴시스

최윤범 회장 측은 고려아연 임시주총 하루 전날인 22일 영풍 지분 10.3%를 호주에 설립한 손자회사 선메탈코퍼레이션(SMC)로 넘겨 고려아연 지분 25%가량을 들고 있는 영풍의 의결권을 묶었다.
의결권 지분을 과반 가까이 확보한 영풍과 MBK파트너스 측이 이사 14명을 선임시켜 이사회를 장악할 것이 확실시되자 신규 상호출자를 형성해 이들의 공격을 방어한 셈이다.

포럼은 “이번 사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조속한 상법 개정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주총이라는 주주권리의 핵심 제도가 무력화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주주들의 의결권을 강탈해 주식회사의 존립을 허무는 행위, 특정 주주의 사익을 위해 회사의 자산과 회사의 법률행위 능력이라는 법인격을 동원한 것 자체, 그리고 주주들의 가처분 신청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주총 전날로 지분 거래 타이밍을 잡은 것 모두 주주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형 인수·합병(M&A)은 사회적 논쟁의 크기가 큰 만큼 그 자체로 시장의 프랙티스(practice·관행)로 굳어진다”면서 “어떤 사회가 대형 M&A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거버넌스 규범의 형성 차원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포럼은 이에 대한 일례로 세븐&아이홀딩스의 사례를 들었다.
일본의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세븐&아이홀딩스의 경우, 캐나다 유통업체 ACT가 세븐&아이홀딩스를 인수하겠다고 제안하자 창업자 가문은 스스로 자금을 조달해 비슷한 가격으로 잔여 지분을 사들이겠다고 맞대응했다.

포럼은 “이에 반해 고려아연은 회삿돈으로 자사주를 공개매수했고, 주주 권리를 희석하는 일반공모를 하려 했다”며 상호주 역시 회사의 돈이 쓰인 것이며 회사와 주주의 부담으로 지배력을 유지하려 한 잘못된 사례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를 꼼꼼히 조사해야 할 것”이라며 “최근 LG, 두산, 현대차가 모회사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해외법인 현지 상장을 강행하는 것 같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많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이 외국 자회사를 악용한 상호출자를 통해 ‘패밀리’의 지배력을 부당하게 확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박미영 기자 my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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