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 장세동은 맹목적인 충(忠)의 대명사다.
장세동은 대통령 경호실장과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재직할 시절 대통령 경호가 단순히 신변 보호 업무를 넘어 대통령의 심기까지 편안케 한다는 이른바 ‘심기 경호’를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심기 경호’는 “대통령의 마음이 편안해야 국정도 잘 되니 심기까지도 경호해야 한다”는 뜻으로 장세동이 만든 신조어다.
장세동은 전두환이 산책하다 돌부리에 걸리면 심기가 불편해질 수 있다며 도로 평탄화 작업을 지시하기도 했다.

지난 2001년 12월 11일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조사를 받기위해 서울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연합뉴스

육사 16기로 하나회에 가입한 그는 1979년 12.12 군사 반란 때 수도경비사령부 제30 경비단장이었으나 지휘계통을 어기고 직속상관인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체포했다.
그 공로로 준장으로 진급했고 전두환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며 권력 실세로 자리 잡는다.
그가 전두환과 관련해 남긴 일화는 숱하게 많다.
그는 1988년 5공 청문회에서는 “차라리 내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한이 있어도 각하가 구속되는 것은 막겠다”고 말해 신군부 최고의 충신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그는 1997년 12월 사면 복권된 후 전두환의 집을 방문해서는 “신고합니다.
각하!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거수경례를 해서 화제가 됐다.

지난 23일 헌법재판소 4차 변론에 증인으로 나온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처신이 장세동을 떠올리게 했다는 뒷말이 나왔다.
김용현은 윤석열 대통령의 혐의나 의혹을 대부분 부인하거나 축소했기 때문이다.
김용현은 윤 대통령이 아닌 자기 스스로 계엄 관련 주요 서류를 작성하고 군도 지휘했다는 주장을 폈다.
김용현은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건넸다는 ‘비상 입법 기구’’ 쪽지를 자신이 작성·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최 권한대행의 국회 진술과 다르다.

국회의 정치 활동 전면 금지 등의 내용이 담긴 포고령 1호에 대해서도 김용현은 “관사에서 직접 개인 노트북으로 작성했다.
과거 계엄 관련 자료를 참고했다”고 했다.
그동안 윤 대통령 측은 ‘김 전 장관이 만들었고 대통령은 부주의하게 보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반면 김 전 장관 측은 “전체적인 검토는 윤 대통령이 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김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의 주장에 거의 동의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김용현은 국회 측이 핵심 탄핵 사유로 제시하는 국회·선관위 병력 투입에 대해서도 “특전사 본관 투입, 경찰 외곽 배치 등 (세부) 계획은 내가 세우고 대통령에게는 보고가 안 됐다”고 주장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윤 대통령의 직접 신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용현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로 대선 전까지 “형님” “아우님”하던 사이였다.
김용현은 4차 변론에 나서며 윤 대통령을 엄호하겠다고 작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계엄의 최종 책임자인 윤 대통령에게 보고도 없이 특전사를 동원하고, 최상목 경제부총리에게 지시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용현 주장대로라면 윤 대통령은 자신의 주체적 판단 없이 김용현의 등에 업혀 계엄을 선포했다는 말이 된다.
김용현의 윤 대통령에 대한 충정이 장세동 못지않은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김용현은 국민을 우롱하고 자신의 주군을 비루한 지도자로 만들고 있다.
박창억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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