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우울증, 단순한 노화가 아니다”

김모(68)씨는 젊었을 때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어디서든 분위기를 주도하는 스타일이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고, 가족 모임을 적극적으로 주최하며 활기찬 성격으로 주변에 에너지를 주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 은퇴한 이후 점점 외출을 꺼리고, 사람들과 연락하는 것도 귀찮아하며 집에서 TV만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가족들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최근에는 예전처럼 밝게 웃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다.

식사는 대충 때우고, 밤에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며, 낮에는 몇 시간씩 누워만 있었다.
손주들이 찾아와도 반가워하기는커녕 귀찮아하며 방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다.
걱정이 된 가족들이 병원을 찾자 의사는 ‘노인 우울증’ 가능성을 제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때 ‘대문자 E’(Extraversion·MBTI 성격유형 검사에서 외향성을 의미)였던 부모님이 예전과 달리 무기력하고 만사를 귀찮아한다면 노인 우울증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우울증은 매사에 흥미가 떨어지고 무력감, 집중력 저하,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불면이나 과수면 등 생리적 증상이 동반되며, 이러한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되면 우울증으로 진단될 가능성이 크다.

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전체 우울증 환자 중 60대 환자가 18.5%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같은해 실시된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는 만 65세 이상 노인의 9.2%가 우울증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이는 상당수의 노인이 우울증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노인 우울증의 진단 기준은 일반적인 우울증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나이 든 환자들에게는 특히 △흥미 상실 △과도한 죄책감 △초조함 등의 증상이 두드러진다.
무기력함과 건강염려증, 불면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가 심하게 나타나 치매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가성치매’(pseudo-dementia)로, 우울증 치료를 통해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
이 같은 증상을 단순한 노화 현상으로 간과하면 우울증이 더욱 악화되어 신체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운동 부족으로 인해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이 악화될 가능성도 높아져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이 진단될 정도로 다양한 증상을 경험하고 기능 저하가 나타난다면, 건강 문제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노인 우울증 치료에는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가 병행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환자들은 정신과 약물이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우려로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정신과 약물이 치매를 일으킨다는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다”라며 “필요한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사교 모임, 취미 생활, 종교 활동 등 사회적 활동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우울증 예방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 충분한 수면을 유지하는 것도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노년기에 접어든 가족 구성원이 예전과 다르게 무기력해하고 외부 활동을 기피한다면, 단순한 노화 현상으로 치부하지 말고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조기 발견과 치료를 통해 노인 우울증의 악순환을 막고, 보다 건강한 노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본 콘텐츠의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세계일보(www.segye.com)에 있으며, 뽐뿌는 제휴를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