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튀르키예서 기다릴 것” 밝혀
푸틴 ‘휴전협상 재개’ 기습 제안에
회의적 태도 보이다 입장 다시 바꿔
“당장 회담을” 트럼프 압박 통한 듯
정상회담 성사 땐 전쟁 후 첫 대면
러에 다시 공 넘겨… 푸틴 결정 주목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15일(현지시간) 튀르키예에서 정상회담을 갖자고 제안했다.
앞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휴전협상 재개를 제안한 데 대해 ‘정상 간 담판을 짓자’며 공을 다시 러시아로 넘긴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에서 “나는 목요일(15일) 튀르키예에서 푸틴을 직접 기다리겠다”며 “이번에는 러시아인들이 핑계를 찾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내일부터 완전하고 지속적인 휴전을 기다리고 있다”며 “이는 외교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필요하다.
살상을 지속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연합뉴스

이날 하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대화 재개를 두고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벌였다.
직접 회담 제안은 푸틴 대통령 입에서 시작됐다.
이날 새벽 푸틴 대통령은 크레믈궁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크라이나 당국에 15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협상을 재개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일방 선언한 72시간의 ‘전승절 휴전’이 종료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전승절 휴전 기간 내내 적대행위를 중단하지 않는다며 비난을 주고받던 양국이 불과 하루 동안 직접 협상에 이어 정상회담까지 진전을 보인 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의 대화 제의는 노골적으로 편을 들어주던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가능성을 언급하며 압박에 나서자 협상 재개 카드를 마지못해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대화 의지를 보여주면서도 우크라이나가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30일 휴전안’에 대한 언급을 빼놓으면서 전장의 공세를 지속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영국 BBC방송은 “푸틴 대통령은 백악관에 ‘나는 평화주의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즉각적인 30일 휴전은 약속하지 않음으로써 전쟁을 계속해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더 점령하려 할 것”이라며 “이스탄불 회담 제안을 통해 미국과 유럽 지도자 사이의 균열을 낼 수 있다는 계산도 하고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전 전사자 사진 닦는 유가족 개전 3년이 훌쩍 넘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 우크라이나 정부의 협상 제안으로 변곡점을 맞은 가운데 11일(현지시간) 한 전쟁 유가족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시내에 설치된 전사자의 사진을 닦고 있다. 키이우=EPA연합뉴스

젤렌스키 대통령도 이날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직접 회담 재개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SNS 글이 올라온 뒤 반나절 만에 정상회담을 역제안하며 태도를 바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트루스소셜에 “우크라이나는 즉시 (러시아의 대화 제안에) 동의해야 한다”며 “나는 우크라이나가 푸틴과 협상을 할 것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러시아와의) 회담을 당장 하라”고 촉구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양국이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고 양보는 최소화하며 균형을 맞추기 위해 주말 내내 외교적 카드를 교환하고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가운데 젤렌스키 대통령이 판돈을 키웠다”고 평가했다.
정상회담 제안이 푸틴 대통령의 협상 의지를 시험하는 한편 외교적 명분을 챙기려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푸틴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회담 요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그는 그간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인하며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두 사람은 2019년 12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분쟁을 중재하기 위해 독일·프랑스 정상과 함께 4자가 파리에서 ‘노르망디 형식’의 회담을 한 이후 5년 5개월 만에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또 정상회담이 아니더라도 직접 회담이 재개된다면 양국은 2022년 전쟁 초기 이스탄불에서 진행된 협상이 결렬된 뒤 3년여 만에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다.
일단 대화 테이블이 차려진다면 여러 변수 속에서 협상이 급진전할 가능성은 있다.
협상일로 지목된 15일에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튀르키예를 방문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명분 싸움을 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중재 속에 협상 테이블에 앉아 극적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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