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에서 공시지가 현실화 로드맵을 발표했는데 공시지가 9억 이하는 2030년, 9~15억은 2027년, 15억 이상은 2025년까지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시세의 90%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보입니다.

고가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나 수입이 적은 고령 은퇴자의 경우 주택 매각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의 보유세가 나와 시간이 갈수록 매물 증가 가능성은 높아지며 당연히 매매가 하방 압력도 점차 강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요.

근로소득자 중 40% 가까이가 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고 있어서 '모든 국민은 적은 액수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의 원칙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마당에 상위 0.1%가 소득세의 19%를, 상위 1%가 소득세의 42%를, 상위 10%가 소득세의 78%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시지가 현실화 로드맵대로 진행할 경우 현 시세가 6억원인 중계 무지개 전용 59㎡ 보유세는 2020년 45만원에서 2025년 63만원, 현 시세가 8억원인 부산 수영더샵센텀포레 전용 84㎡ 보유세는 2020년 90만원에서 2025년 150만원으로 늘어나는데 비해 시세가 33억원인 래미안 대치팰리스 전용 84㎡ 보유세는 2020년 907만원에서 2025년 4,632만원으로 늘어납니다.

래미안 대치팰리스 전용 84㎡ 시세가 중계 무지개 전용 59㎡에 비해 5.5배 비싼데 세금은 2025년이 되면 73.5배를 더 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수영 더샵센텀포레 전용 84㎡에 비해서도 시세는 4.1배 비싼데 세금은 2025년이 되면 30.9배를 더 내게 됩니다.

제가 법에 능통한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모든 국민이 조세와 관련하여 평등하게 취급되어야 하고 특정의 납세 의무자를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조세평등주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태입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1가구 1주택 실거주자에게까지 이러한 징벌적 과세를 부과한다는 점입니다. 열심히 돈 모아서 조금씩 좋은 집으로 옮겨왔거나 오랫동안 한 곳에 살아왔던 실수요층에게까지 이런 수준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것인지 눈을 의심케 합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앞으로 입주 물량이 급감하는 시기에 이런 과세를 한다는 점입니다. 다주택자들은 더 확실한 선택의 기로에 내몰리게 됩니다. 매도 또는 증여하거나 세입자에게 늘어난 세 부담을 전가시키기.

2020년 4.9만호 → 2021년 2.7만호 → 2022년 1.7만호로 급감하는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으로 보건대 전세 대란은 더욱더 심각해지고 전세에서 월세 또는 반전세로의 전환도 더 가속화될게 뻔한데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증세는 필연적으로 세입자에 대한 세 부담 전가가 일어납니다.

'집값 하락'이라는 정책적 목표는 당연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책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공급 확대라는 수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다수의 시장 참여자에게 타격을 주는 수단을 택해야 하나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세 부담을 버티지 못하는 유주택자의 매도로 집값이 내려갈 수 있겠죠. 세금 내느라 허리가 휘어지는 유주택자들도 많아지겠죠. 그러나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 못하는 세입자 역시 매우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애초부터 공급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고 양도세 중과를 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잡혔거나 지금보다는 훨씬 상승폭이 낮았을 집값인데 정책의 실패를 메우기 위해 이렇게 많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타격을 가하는 징벌적 세금 부과는 매우 유감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