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주담대가 반짝하고 뜨더니 한순간에 사라짐.

뜬금포도 이런 뜬금포가 없음.

 

지금 부동산 시장의 디폴트 리스크는 시행사 -> 금융권 -> 시공사를 거쳐 최종 -> 개인(분양자or가계)에게 넘어가고 있는 상태임.

 

이게 뭔 말인가 싶지만, 지금까지 시장 돌아가는 분위기를 요약한 것임.

 

우린 IMF 때 은행과 기업이 줄줄이 망해서 아빠도 실직하고, 나라가 거덜 날 뻔했던 PTSD가 있음.

 

미국의 금리 인상은 국내 대출 금리 폭등을 야기했고, 부동산 시장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듦.

 

특히 단기간에 고금리로 돈을 빌려 토지 매입 후 분양을 준비하는 시행사 쪽에서 직격탄을 맞음.

 

저금리 부동산 영끌 붐을 타고, 시행사들은 큰돈을 빌려 토지주들의 땅을 사들임.

 

이때 토지매입을 위해 빌리는 돈을 브릿지론이라 부르는데, 그다음 PF 대출로 넘어가는 중간다리 역할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임.

 

금리가 오르면서 부동산 시장 여기저기서 이 브릿지론에 문제가 생김.

 

다음 단계인 PF 대출로 넘어가지 못하고 브레이크가 걸림.

 

분양시장이 나빠질 것을 예감한 금융사들이 시행사에게 PF 대출을 안 해줌.

 

그렇다고 빌려준 돈 회수도 안될 것 아니까 이 브릿지론을 억지로 연장하며 끌고 감.

 

대출이 죽지도 않고, 이자를 못 내니 살아 있는 것도 아니라서 좀비 상태가 돼 버림.

 

보다 못한 정부가 지난 9월 부동산 대책으로 숨통을 틔여줌.

 

“정부 믿고 은행들은 PF 대출해 줘라”

 

사망 직전에 있던 시행사들은 쌍수 들고 환영을 했고, 브릿지론에 실려 있던 리스크는 PF 대출로 자연스레 넘어감.

 

대신 규모가 더 커짐. 

 

아파트 사업 PF 대출 총액이 브릿지론 보다 더 크기 때문임.

 

PF 대출에 성공한 시행사는 시공사를 모집하고 공사비를 지급하며 분양자 모집에 나섬.

 

정부가 9월 대책으로 브릿지론을 그다음 단계인 PF로 넘어갈 수 있게 해줬다면,

 

또 그다음 단계인 분양시점에 와서는 미분양이 안되게끔 50년 주담대로 유동성 확보의 길을 열어줌.

 

50년 주담대는 정말 획기적인 상품임.

 

누구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7-80년대 오일 쇼크 이후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금리 상승과 DSR까지 겹친 상황에서도 개인이 억따리 대출받는 걸 부담 없도록 만들었음.

 

이렇게 총알 장전한 용자들은 올 상반기 저점 구간에 분양주택 계약서에 도장을 찍음.

 

이때 분양 완판한 시행사나 시공사들은 소리 벗고 팬티 지른 시점임.

 

사실 분양까지 잘 마무리되었다면 리스크는 작고 얕게 쪼개진 것이니 출구 전략이 성공한 걸로 볼 수도 있긴 함.

 

이제 남은 건 가계부채의 관리와 주택시장의 온도 조절임.

 

그리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PF 리스크의 화력 제거임. 쉽게 말해 미분양 우려 해소.

 

이렇게 보면 정부의 다음 대책에는 수요 촉진 방안을 중요하게 다룰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싶음.

 

똥 싸다 만 것처럼 50년 주담대가 급 종료된 걸 보면, 가계부채도 이제 한계라고 판단한 듯함.

 

아파트도 주식처럼 가까이서 보면 호재도 있지만, 매크로는 그야말로 비극임.

 

냉온탕이 따로 없음.

 

지금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금융 리스크가 부동산 산업 어딘가에서 삐끗하는 순간 그냥 요단강 건너는 거임.

 

김진태가 레고랜드 채권 디폴트 선언할 때 회사채 시장 박살 날 줄이나 알았겠음?

 

응 뭐? 어..? 어..! 하다가 그냥 한방에 와르르 가는 거임.

 

공급발 리스크, 저출산 리스크는 지금 리스크 축에도 못 낌.

 

적당히 떨어져서 보면 공급 부족, 전세가 상승 등은 여전히 좋은 시그널인 건 변함없음.

 

매크로가 문제지.

 

가계부채가 커서 걱정이라고들 하지만, 건설사가 도산하는 것보다, 은행이 망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다 생각하는 것 같음.

 

백지장도 맞들면 낫긴 한데, 그렇다고 금융 부채 리스크까지 우리 모두 나누면 뭐 어쩌자는 거임?

 

98년엔 국민 스스로 금 팔찌 보내고 저금통 털어서 빚진 나라를 살렸지만,

 

23년엔 나도 모르는 사이 제2의 금 모으기 같은 고통 분담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음.

 

경기 침체가 만든 부실 덩어리가 조각조각 나뉘어 분양 계약서와 같이 붙어 오는 중임.

 

잠시 열었다 닫힌 50년 주담대는 부동산 산업에 묶인 부채 리스크를 수천 명의 개인에게 1/n로 깔끔하게 분산/헷지 한 그야말로 신의 한 수임.

 

이번 공매도 금지 조치도 총선이 있다 보니 정치권 입김이 작용했을 테지만,

 

서둘러 발표한 것을 보면 가계부채까지 지금 못 버티고 넘어가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기저에 깔려 있었지 않았나 싶음.

 

끗.

 

- 뭐든 줬다 뺐는 게 제일 나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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