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안되어 5번 이사 다닌 썰] 시리즈

우리 부부의 신혼집은 지은 지 20년이 넘은 구축 아파트였다. 찾던 단지에 20평대 전세 매물이 없어서 할 수 없이 30평대 전세를 3억 중반대에 구했다.

회사 다니면서 모은 돈에 아내가 모은 돈을 합치고 대출까지 땡겨 전세금을 마련했다. 그땐 그냥 아무 생각 없을 때라 당연히 집을 사는 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부모님 포함 내 주변에는 집을 사라고 권하는 어른도 없었고, 그땐 딱히 집을 사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대치동 은마 30평: 매매 8.5 / 전세 3.5

잠원동 신반포2차 25평: 매매 8 / 전세 3

반포동 반포주공1 22평: 매매 11.5 / 전세 3

정도 하던 시절이었다. 하아... 대출 제한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때 주담대 받아 몸테크할껄껄 껄무새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여튼 구축 아파트다 보니 지하주차장이 없어 매일 밤 야근 후 귀가해선 주차 테트리스를 하였고, 자다가 갑자기 전화 와서 차 빼러 나간 적도 많다.

여기 살며 첫아이를 낳았다. 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지방의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신다던 임대인이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오시겠다고 돌아오는 만기 때 나가달라고 하신다. 백일도 안된 아기를 데리고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야 했다.

첫 집에 사는 동안 돈이 좀 모였다. 2년마다 이사 다니는 것도 힘들고 실거주의 1주택의 필요성을 깨달아서 갭으로 아파트를 매수하기로 결정했다 라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신축 아파트로 이사 가기로 결정했다ㅠ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

이사 간 집은 준공 6년 차로 평소 지나다니면서 와 저기 살면 좋겠다 싶던 그런 아파트였다. 반전세로 보증금 5억대에 월세가 50만원이었다.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 월세는 내고 싶지 않았는데, 임대인이 본인도 현재 사시는 집에 월세를 내셔야 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신축 생활은 너무 좋았다. 평생 신축은 처음 살아봤는데, 주차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것이 가장 행복했다. 비 오는 날도 사무실까지 비 한 방울 안 맞고 출근할 수 있었다. 아기와 단지 산책도 너무 좋고 단지 내 어린이집 보내기도 좋고 마냥 좋았다. 집도 깨끗하고 창호도 견고해서 바람도 안 새고 아 신축에 사는 맛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이 집에 산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아픈 가족이 생기는 바람에 가족을 돌보기 위해 합가하기로 결정을 했다. 함께 살 집을 다시 구해야 했기에 두 집의 전세금을 합쳐 같은 단지의 좀 더 큰 평수 집들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큰 집이다 보니 넓어서 다 좋긴 했는데, 그중에서도 한 집이 정말 압도적으로 맘에 들었다. 그 집으로 가고 싶었는데 집주인이 매매가 우선이라며 전세는 후순위라고 한다. 그렇게 한 달 정도 기다렸다.

대가족이 움직이는 건 쉽지 않다. 한번 이사 갈 때 마음에 드는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 집이 자꾸 생각났다. 정말 헉 소리 나게 멋진 뷰가 있던 그 집. 매일 아침을 그런 뷰를 보며 하루를 맞이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뷰가 나오는 다른 매물은 없었다. 딱 하나 그 집뿐이었다. 조바심이 들었다.

그래서 매수했다. 인플레이션이고 뭐고가 아니라 그냥 오직 뷰 때문이었다. 웬만하면 전세로 갈아타려고 했으나, 그 집에는 꼭 살아보고 싶었다 ㅠ 부끄럽지만 이게 내 매수 이유였다.

매수를 고민하면서도 이미 너무 많이 오른 아파트 가격에 상투 잡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이미 신혼 초 이후 이때까지 서울 집값은 꽤나(라고 당시엔 생각했으니 지금 보면 '약간' 정도) 올라 있었다. 

이 가격에 샀다가 물리면 평생 후회하겠지 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물론 그 뒤로 닥쳐올 부동산 폭등장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이때가 서울 폭등 전야였던 2017년 봄이었다.

아직도 가끔 이때 집을 사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폭락론자가 되었을지, 아님 눈물을 머금고 좀 더 비싸게 결국 샀을지 모르겠다. 전자의 확률도 없진 않았을 것 같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실거주 안정이 필요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뒤늦게 샀을 것도 같다.

첫 등기를 치고 나니 세상이 달라졌다. ‘내(가 가진) 집’에 대한 애착은 ‘내(가 사는) 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다. 우리꺼니까 우리 원하는 대로 고치고 꾸미고 가꾸고 관리했다.

사람한테 자기 소유라는 게 얼마나 특별한 의미인지 다시 한번 생각했다.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한 자본주의가 다른 모든 체제를 제치고 살아남은 이유겠지. 내 꺼니까 내 맘대로 = 주체성 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 부동산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집을 사기 전에 했어야 하는 행동이지만) 카페도 들락거리고 단톡방, 블로그 등등 찾아보면서 부동산에 대해 더 찾아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임장 까지는 아니지만 다른 동네 다른 단지를 지나갈 땐 입지랑 가격도 한 번씩 확인해 보곤 했다. 그제야 그간 무관심했던 상승론자들의 의견이 귀에 들어왔다.

집을 가지고 나니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고, 내 관심 밖에 있었던 거대한 세상이 내 우주로 들어왔다.

이 집에 사는 동안 행복한 기억이 많다. 둘째도 태어났다. 아침마다 창밖을 바라보면서 행복했고, 그 풍경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밖에 나갔다 집에 들어오면 항상 아늑하고 편안했다.

우리 가족은 이 집을 정말 좋아했다. 그냥 이대로 여기서 평생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치 않는 이별이 다가온다는 것을 사실 나는 예감하고 있었다.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 두 편으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https://m.blog.naver.com/double-d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