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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토막 상식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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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토막 상식] 시리즈
글월 문(文) 자의 기원은 전통적으로 문양이나 무늬를 뜻하며, 일부 해석에서는 돌의 단면에 새겨진 결(무늬)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絲)로 만든 무늬라는 뜻의 무늬 문(紋) 자도 있습니다. 인문학(人文學)은 ‘사람의 결을 아는 학문’이라는 의미로 귀결됩니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나와 타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면 그 역시 인문학이라 부를 수 있겠지요.
같은 문(文) 자를 쓰지만, 문학(文學)과 인문학(人文學)은 그 결이 다릅니다. 인문학은 보다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사람의 결을 구조화하는 이론의 성격을 띱니다. 보편에 대한 학문이죠. 반면 문학은 보편이 아닌 개인에 주목하며, 그 개인이 바라본 세상의 결을 포착해 냅니다. ‘사회가 정의하고 역사가 정리한다면, 문학은 그 뒤로 흘러 소외된 개인들에 주목하여 정의되고 정리된 것들을 헝클어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문학이 가진 독특한 힘, 즉 사회의 틀에 맞춰진 보편성 너머에서 개인의 목소리와 경험을 드러내는 능력을 잘 보여줍니다.
이제, 문학이 개인의 목소리를 어떻게 구현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소설 작법으로 시선을 옮겨보겠습니다. 소설의 기본 구성에는 인물, 사건, 그리고 배경이 있습니다. 여기서 사건이란 인물이 겪는 갈등 요소를 말합니다. 모든 소설의 '재미'는 갈등에서 시작됩니다. 내적이든 외적이든, 소설 속 인물은 반드시 갈등을 겪습니다. 내적 갈등은 인물이 자신의 가치관, 신념, 감정과 싸우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외적 갈등은 인물이 주변 인물이나 사회적 상황과 부딪히면서 생깁니다. 이 두 갈등이 얽히고설키며 이야기는 긴장감을 유지하고, 독자의 몰입을 이끌어냅니다.
여기에서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순문학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장르문학은 ‘재미’에 더 집중합니다. 물론 최근에는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는 추세입니다. 이 흐름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 바로 1856년 출간된 <보바리 부인>입니다. <보바리 부인>은 교훈적 서사에서 벗어나 문학적 사실성과 인간 내면의 복잡성에 더 주목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보바리 부인> 이후의 소설은 교훈보다 사실성과 인간 내면의 복잡성, 그리고 '재미'를 추구하게 되었지요.
이런 변화는 영화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현재를 기점으로 볼 때, 예술영화가 ‘이미지에 대한 사색’이라는 읽기 방식을 요구한다면 대중영화는 ‘분산된 정보를 수집하는’ 방식의 읽기를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 요약 영상처럼 화면과 자막, 나레이션이 동시에 등장하는 콘텐츠는 깊이보다 빠른 정보 전달과 인물 중심의 전개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 방식이 '재미'를 전달하는 데 더 효과적이니까요. 이는 현대 소비자들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1605년 출간된 <돈키호테>의 위대함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돈키호테>는 위대하지 않은 영웅의 이야기입니다. 기존의 영웅담이 위대하고 성공한 영웅을 다뤘다면, 세르반테스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노인 돈키호테를 통해 전통적인 영웅의 위대함과 성공 대신 어리석음과 실패, 그리고 인간적인 약점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돈키호테는 기사 소설에 심취해 현실을 왜곡하고, 풍차를 거대한 괴물로 착각하여 무모하게 돌진합니다. 그의 행동은 객관적으로 보면 우스꽝스럽고, 결국에는 실패로 끝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이 가진 꿈과 이상, 그리고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돈키호테>는 영웅의 조건을 재정의합니다. 세상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인물. 비록 그 신념이 허황되고 실패로 귀결된다 해도,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고귀함과 진정성이야말로 진짜 위대함임을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보여줍니다. 바꾸어 말하면 <돈키호테>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는 이는 그게 누구든지 영웅이 될 수 있는 셈입니다. 이는 <돈키호테>가 많은 문학사 연구에서 세계 최고의 책으로 꼽히며,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이유입니다.
인문학과 문학, 소설과 영화, 나아가 고전과 현대의 경계는 점점 더 유연해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경계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결을 탐구해 나가는 일입니다. 나와 타자, 개인과 사회, 현실과 환상, 실패와 꿈. 이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그 경계 너머에서 인간의 결을 묻고, 어루만지며, 다시 쓰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문학적 상상력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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