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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공무도하' 후기.jpg
kf80 2025-03-09 21:00   조회 : 1092
1000053218.jpg (51 KB)20250305_165541.jpg (293.1 KB) More files(20)...

시리즈게시글 아이콘[후기]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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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문학동네/2009년


0

님아 강을 건너지 말랬어도

기어이 건너려다 빠져죽으니

어찌하랴 님을 어찌하랴

'공무도하가'

-한 광인이 아내의 만류에도 물에 걸어들어가 익사하고, 

그 아내도 남편따라 물에 빠져 자살하는 광경을 본 뱃사공. 

집으로 돌아온 사공은 아내에게 그 광경을 전하고, 

아내 '여옥'은 

광인아내의 시점으로 그 광경을 노래로 지어 

후대에 전한다  


1

칼의노래, 남한산성, 하얼빈, 현의노래에 이어

5번째로 본 김훈의 소설. 

읽기로했던 김훈소설은 이걸로 마무리됐네요.

앞선 소설들 전부가 

구한말 이전에 한반도에 일어났던 참상들

(가야멸망, 임진왜란, 호란, 일제식민지화직전)

에대한 얘기라면

이 소설은 배경이 현대라 색달랐어요.


2

이 소설을 고조선의 시 '공무도하가'와 메칭해보자면,

자기가 본 사연들을 아내에게 얘기해준 뱃사공은 

주인공 문장수 기자,

그 얘기를 들은 아내는 여자친구 노목희겠는데,

노목희는 '여옥'이 시를 지어 후대에 전한것과 달리

"그냥 냅두라"고 말하죠.

이 소설의 제목이 '공무도하가'가 아닌 '공무도하'인게 

이런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함.


3

이 소설이 특이한게 챕터가 안나눠져있어요.

내용에 전환이 있으면 빈 줄이 들어가있는 정도. 

전체적인 느낌은 뭐랄까,

시간이나 사건, 혹은 관념의 흐름이 소설안에 있어서 

내가 그걸 읽어갔다기 보단

미술관 벽에 걸려있는 

'공무도하'라는 제목의 큰 그림이 있고, 

나는 그 그림의 가운데도 봤다가 구석도 봤다가, 

왼쪽도 봤다가 오른쪽도 봤다가, 

자세히도 봤다가 멀리서도 봤다가 하면서 

감상한? 느낌이었어요.

문장수와 노목희, 

그리고 타이웨이 교수라는 중심얘기가 있긴 한데

주로 '해말'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그 일들과의 인과나 상관관계 서술을 

작가가 "적극적으로" 외면하는 전후의 일들,

그리고 그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얘기, 

이 전부가

사소하고 명료하고 쉽고 분명한 말들로 흩뿌려져서 

큰 그림 한폭에 다 담겨있는 느낌.

책 마지막에 실려있는 '작가의 말'을 읽고 

'그래서 그랬구나'했는데,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 

나는 그 관계의 윤리성과 필연성을 불신한다."


4

작가의 말을 소설속에서 대신하는게 

타이웨이 교수의 관점같았는데, 

그를 설명하는 몇구절을 옮겨보자면,

"그의 글 속에서는, 무기를 든 인간과 악기를 든 인간, 

꿈꾸는 인간과 싸우는 인간, 세우는 인간과 부수는 인간, 

쫓기는 인간과 짓밟히는 인간이 

모두 저 자신의 자리에서 정당했다. 

그것들은 모두 필연적인 존재로서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의 글은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하려고 떼를 쓰지 않았으며 

논리와 사실이 부딪칠때 

논리를 양보하는 자의 너그러움이 있었고, 

미리 설정된 사유의 틀 안에 

이 세상을 강제로 편입시키지 않았고, 

그 틀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세상의 무질서를 

잘라서 내버리지 않았으며, 

가깝고 작은 것들 속에서 

멀고 큰 것을 읽어내는 자의 투시력이 있었다"

"파로스 등대의 불빛에 대하여 타이웨이 교수는 

아무 쪽도 편들지 않는 긴 글을 썼다"


5

석달전 24년 12월 3일 이후론 요 몇년 어느때보다 

윤리와 명분, "의"와 "순리"에 대한 판단이 중요해진 요즘,

관찰자의 모든 주관을 유보해버리는 태도, 

존재하는 모든사람과 모든 일들에 대한 존재긍정, 

윤리와 인과를 불신하고 

보편혐오(혹은 보편연민)를 보이는게 과연 어떤 의미일지, 그게 더 진실을 보는 시선인 것일지 회의감이 들었는데

내란이 없었다면, 

또 그 수괴가 그제 냅다 풀려나지 않았다면

여운의 느낌이 좀 달랐을지도.

이런 미쳐돌아가고있는 상황에서 

최소한 지금은 

타이웨이 교수의 관점으로 윤석열을 볼순 없잖겠어요.

물론 소설속에서 

이 모든 일들을 "기삿거리가 없다"라거나 

"절도 폭행 음주난동뿐, 아주 조용해. 적막강산이야"

라고 말하는 인물이 있는걸 보면, 

머뭇거림? 판단유보?를 역으로 비판하는 얘기일수도 있겠지만 

지금시점엔  잘 모르겠어요. 

위키보니 '머뭇거리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라고도 소개돼있던데, 

나중에 다시 읽으면 그게 느껴질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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